2020년 7월 14일 (화)
(녹)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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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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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5-02 ㅣ No.137958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번 물어보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행하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장황한 말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더 큰 호소력을 주기도 합니다. 여러 사람의 말보다는 한 사람의 행동이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코로나19의 현장에서 감동을 주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방호복을 입고 의자에 잠시 기대어 눈을 부치고 있는 의사의 사진입니다. 말은 없었지만 현장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의료인들의 수고가 정말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콧등에 밴드를 부친 간호사들의 사진입니다. 마스크를 하루 종일 착용하니 콧등에 상처가 났고, 밴드를 부친 것입니다. 밴드를 부쳐가면서까지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천과 아산의 주민들이 길가에 걸어놓은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현수막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푹 쉬다가 가십시오.’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버스를 탔던 교민들은 현수막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을 겁니다.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아버지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위험이 있음에도 주민들은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었습니다. 2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주민들은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바이러스는 백신과 치료를 받으면 사라집니다. 두려움과 공포는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 사라집니다. 길가의 현수막을 보면서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열대를 가득채운 물건을 보았습니다. 코로나19의 위기가 있었지만 한국은 사재기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고 있으며, 질병관리본부의 대응을 믿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제가 있는 뉴욕에서는 텅 빈 진열대를 보았습니다. 휴지를 살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두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327일입니다. 텅 빈 바티칸 광장에 비가 내리고 있었고, 교황님 홀로 제단으로 올라가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고령의 교황님이 홀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듯이 교황님은 기도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고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풍랑에 흔들리는 배 안에서 두려워했던 제자들처럼 교황님도 예수님께 두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고, 믿으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렇게 믿고 싶지만 솔직히 아직은 두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광장은 텅 비었지만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님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자연과 생태계를 함부로 대했음을 반성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사제는 신자들을 더욱 그리워하는 시간이 되었고,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 하는 미사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전구하심으로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회개입니다. 욕심과 교만함으로 나만을 위해서 살았다면 겸손과 희생으로 타인을 위해서 살도록 마음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어진 능력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능력과 재능으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회개했는지 우리의 뜻대로 살아가는지를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서는 먼저 함께 사는 가족들의 음성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이웃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억울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 병든 이들을 치료해 주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타인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신학생 때 읽었던 글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이것이 하느님의 음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힘없고 약한 자의 고통을 나누며, 사회정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제

사리에 맞지 않는 독선을 피우지 않으며, 평신도와 함께 본당을 이끌어 가는 사제

겸손하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제

죽기까지 사제 성직에 충실한 사제

평신도들에게 적절한 강론을 준비하는 사제

검소하게 물질에 마음 쓰지 않으며, 공금에 명확한 사제

웃어른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말과 행동에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제

청소년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며, 교리교육에 힘쓰는 사제

성사 집행을 경건하고 예절답게 하는 사제

교구장과 장상에게 순명하며, 동료 사제들과 원만한 사제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교우에게 매이지 않는, 양쪽 귀를 모두 여는 사제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 회개의 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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