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1일 (월)
(홍)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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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냐시오 로욜라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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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7-30 ㅣ No.139800

우연히 인간의 몸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인간은 약 5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50조의 생명이 함께 사는 공동체라고 합니다. 인간의 세포는 약 1.4 볼트의 전기를 가질 수 있는데 이를 합하면 700조 볼트의 전기라고 합니다. 700조 볼트의 에너지는 상상할 수 없는 힘입니다. 이 에너지를 동양에서는 기()라고 합니다. 인간의 몸은 어마어마한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인간의 몸은 마음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50조의 생명이 나와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희망을 노래하면 50조개의 생명도 그렇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절망에 빠지면 50조개의 생명도 그렇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이런 능력과 힘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믿으면 50조개의 생명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믿지 못하면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과 몸이 서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친교를 나누면서 이웃들과 한 잔 할 때가 있습니다. 한 잔은 좋은데 기분이 좋으면 더 마실 때도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할 때면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맛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음식인데도 과음한 다음 날의 식사는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속에서 잘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플 때도 그렇습니다. 평소에 맛있게 먹던 음식도 손이 가지 않습니다.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음식을 받아들이는 제 몸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이 있으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정당소속이나 이념과는 상관없습니다. 건강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모 정당에서 마스크를 쓰면 지지하지 않는 것이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우리 편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스크를 정치적인 신념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이는 코로나19의 확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만나서 조심해야 할 대화의 주제가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정치이야기, 종교이야기, 군대이야기입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정 반대로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임진왜란이 있기 전에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습니다. 한쪽은 일본은 절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왜소한 체격이었고 약해 보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다른 한쪽은 일본은 곧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눈빛이 날카로웠고 강해 보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는 50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비슷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종교는 절대자의 이름으로 남을 판단하고 단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다른 종교와는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종교적인 신념은 개인의 이성적인 판단과 윤리적인 판단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이지만 아직도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를 탄압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계급사회입니다. 전쟁은 국가의 이름으로 살인을 합법화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다른 문화와 전통을 없애는 것을 합리화하였습니다. 군대는 그것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잘 안다는 선입견이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40일간 단식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고, 기쁜 소식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표징과 새로운 가르침으로 감동을 주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 그랬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축일로 기억하는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두 개의 깃발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깃발이고, 다른 하나는 사탄의 깃발입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에 있으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깃발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7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사랑이 풍성하게 열매 맺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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