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8일 (토)
(녹)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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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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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9-30 ㅣ No.141119

지난날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사진을 모아 놓은 앨범을 보곤 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후배들이 만들어 준 추억록이라는 앨범이 있습니다. 신학생 때 동창들과 함께 했던 앨범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간직하신 몇 장 안 되는 사진도 있습니다. 동생 수녀님과 고양이를 앞에 두고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6, 수녀님은 4살 때인 것 같습니다. 형들과 장화를 신고 뒤뜰에서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4, 작은 형은 7, 큰 형은 9살 때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시간이 흘러 빛바랜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을 일이 많지 않았고, 찍었던 사진들도 이사를 다니면서 없어지곤 하였습니다. 사진기에 필름을 넣고 뚜껑을 닫고, 사진을 찍으면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빴는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은 후에는 본당 별로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8권의 앨범에 사제생활 29년이 담겨있습니다. 보좌 신부 때의 사진에서는 열정과 순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주일학교 교사, 청년, 주일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행사에 함께한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사진 속의 모습은 모두 밝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젊은 날이었고,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나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본당 신부 때의 사진에는 여유와 웃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어른들과 함께한 사진이 많았습니다. 사목위원, 노인대학, 구역 봉사자, 성가대, 전례 봉사자, 구청직원들과 함께한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식사하는 자리, 마이크 잡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본당에는 행사가 많고, 사람 좋아하는 저는 가능하면 함께 했습니다. 교구청에 있을 때는 사진 찍을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목이기보다는 직장과 같았습니다. 교구장님과 교구청 신부님들과 함께 낚시 가서 찍은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5년 동안 교구청에 있으면서 1번 여행을 같이 갔습니다. 그만큼 각자의 자리가 바빴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사진 찍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에는 너무 많은 사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 보게 됩니다. 스마트폰 때문인지, 게을러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앨범도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지만 나의 삶이 저장되는 곳이 있습니다. 나의 글이 저장되는 곳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공간입니다. 제가 있던 본당 홈페이지에, 교구청 성소국의 홈페이지에 저의 글과 사진이 저장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기억하는 자리에, 기억하지 못하는 자리에 삶의 추억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내가 기억하고, 내가 저장하는 곳의 추억과 기억들은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고,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원하지 않아도 계속 남아 있기도 합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걱정되거나 두려워서는 아니지만 이왕 세상에 왔으니 좋은 추억을 남기면 좋겠습니다. 따듯한 추억을 남기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위로해 주었던 추억을 남기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추석입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가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들 보내고 계시는지요? 여성분들은 음식 준비를 하시느라 바쁘실 것입니다. 남성분들은 모처럼 가족들과 만나서 한잔 하시느라 즐거우실 것입니다. 남성분들이 설거지를 도와 드린다면 더욱 행복한 추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윷놀이, 고스톱을 하는 것도 좋지만 모처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있으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르신들은 둥근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습니다. 이번 추석을 지내면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고향 가는 모든 분들이 가족들과 정겨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도 자기가 살던 곳으로 가서 다시 안 오면 좋겠습니다. 치료약과 백신이 개발되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일상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추석을 지내면서 마음으로 바라는 것들을 하느님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쌓아 놓은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어쩌면 하늘에도 앨범으로 기록되는 것은 아닐까? 부자가 세상의 창고를 세우고 재물을 보관하며 즐거워했지만, 우리가 쌓아야 할 것은 하늘의 창고가 아닐까?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질 세상의 창고에 보물을 쌓으려하지 마십시오.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안전한 하늘의 창고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모든 재물과 물질의 진정한 소유주는 바로 하느님이심을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재물과 물질을 이웃과 나누며 우리 마음의 창고에 사랑과 희생 그리고 나눔과 섬김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추석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도 조상과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풍요와 여유로움의 이면에는 땀 흘리는 노력과 수고가 있었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겠습니다. 아울러 말뿐인 사랑보다는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추석이 감사와 고마움의 축제가 되고, 풍요와 기쁨의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께 오롯한 감사를 드리고 조상을 공경하며 가족과 이웃과 화목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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