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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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팔일 축제 제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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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12-29 ㅣ No.151904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운동선수들이 하는 말 중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절망도, 근심도, 걱정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면, 우리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기다릴 수 있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절망은 희망으로, 근심은 위로로, 걱정은 용기를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버지니아 성 정 바오로 성당으로 대림특강을 다녀왔습니다. 본당 신부님께 신문 홍보도 부탁드렸습니다. 코로나 변이 오미크론도 시작되었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제게 수호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버지니아에 고등학교 동창이 있었고, 저의 강론을 읽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홍보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쉼표를 찍어 놓으셨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열매를 먹은 것은 분명 인류에게 원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죄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고, 그 원죄가 있었기에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예수님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십자가였습니다. 유다는 하느님께서 찍어놓으신 쉼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의 눈물로 쉼표를 이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거두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로 3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절망으로, ‘다 이루었다.’는 확신으로, ‘목마르다.’라는 갈망으로, ‘제 영혼을 아버지께 맡겨드리나이다.’라는 순명으로,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사랑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당신이 사랑하시는 교회를 맡겨 드렸습니다. 죽음의 십자가는 부활의 꽃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하느님나라 운동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2달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는 제게 마침표가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혈압이 높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받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검사 결과 다른 부분들은 모두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의 건강을 돌봐 주실 의사 선생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혈압약을 처방 받아서, 혹시 모를 위험을 예방 하게 되었습니다. 원망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미워해서는 건강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따지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한 때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지금 문화를 선도하는 서구 문명도 한 때는 그리스, 로마의 문명으로부터 혜택을 받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사제생활 30년을 하고 있는 저도 한 때는 철부지 어린이였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할 수 있다면 좀 더 겸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나비가 한 때는 땅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였음을 기억한다면 하늘을 나는 기쁨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마침표는 오직 하느님의 몫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올해도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363일을 욕심과 욕망 때문에 채우려고만 했어도, 오늘과 내일 마음을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산다면, 베푸는 삶을 산다면, 기도의 삶을 산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한해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헤로데가 살았던 궁전에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과 규율에 얽매서 살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한나는 예수님을 보았고, 축복의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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