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7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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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월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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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1-23 ㅣ No.152466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지역에서 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심시켰다. 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602년 교구장이 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에 선종하였다.

 

 

1독서<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7.10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사울이 죽자 원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운다.

 

 

 

 

복음<사탄은 끝장이 난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살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사들대신 어록에서는 바리사이들”(마태 12.24) 혹은 그들 가운데 몇 사람”(루카 11.15)이라 한다.

 

22절에서는 두 가지 모함을 구분한다. 첫째는 예수께 베엘제불이 붙었다고 한다(22ㄱ절). 베엘제불은 히브리어 복합명사로서, 직역하면 집주인이란 뜻인데(마태10.25)이교도 신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30절에서 베엘제불을 일컬어 더러운 영이라 하니 그는 귀신들 두목이 아니라 한 귀신인 셈이다. 사실 예수님은 귀신이 들렸다는 모함을 종종 받으셨다(요한 7.20; 8.48; 10.20).

 

둘째 모함은 예수께서 귀신들을 축출한 사실을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22ㄴ 절). 이 모함과 거기에 대한 답변이 어록에 더 잘 전해오는데 루카에 따라 옮기면 이렇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그는 벙어리 귀신이었다. 귀신이 나가자 벙어리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군중은 놀랐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는 귀신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여러분의 자식들은 누구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바로 그들이 여러분의 심판관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인용한 어록의 기사는 매우 자연스럽다. 오직, 베엘제불을 귀신 두목이라 한 것만은 뜻밖인데 이는 어록작가가 귀신 두목 사탄과 베엘제불을 동일시한 결과일 것이다.

 

23

22-30절에는 다섯 가지 전승요소가 집성되 있는데 23-26절은 22,ㄴ절에 이어 셋째 전승요소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 하나 매우 간결하기 때문에 차라리 상징어라 하겠다. 나라든 집안이든 갈라지면 망하게 마련이란 상징어(24-25)를 사탄의 조직에 적용한다(23.26). 예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분이 귀신을 축출한 사실을 악의적으로 풀이한 데 대한 또 한가지 답변임에 틀림없다. 같은 상징어가 어록에도 전해온다(마태12.25=루카 11.17).

 

27

27절은 넷째 전승요소인데 상징어만 있고 그 뜻을 밝히는 설명어가 없다. 그러나 당신의 구마행위를 두고 하신 말씀임에 틀림없다. 상징어의 뜻인즉, 더 힘세 이가 덜 힘센 이(사탄 혹은 귀신)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그 세간(부마자)을 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설은 비교점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우의적 해설이요, 따라서 이 상징어는 일종의 우화라 하겠다. 27절과 같은 상징어가 어록에도 전해온다(마태 12,29=루카 11,21-22).

 

28

28-29절에는 다섯째 전승요소가 적혀 있다. 본디 앞뒤 문맥과 관계없이 전해온 이 단절어는 직역하면 아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로 시작된다. 유다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아멘이라 응답한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유별나게 당신 말씀 첫머리에 아멘(공관복음) 혹은 아멘 아멘(요한 복음)이라 하시는 때가 있다.

 

그분의 독창적 어법에는 당신의 말씀이야말로 참되다는 확신이 번뜩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멘으로 시작되는 말씀은 죄다 예수 친히 말설하신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신도들이 자기네가 만든 말을 예수님의 말씀인 양 내세우면서 그 앞에다 아멘을 덧붙인 경우도 있다. “아멘, 나는 ... 말합니다란 표현은 마르코복음에 열세 번 나온다.

 

28-29절 단절어는 그 유래와 뜻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우선 마르코 복음사가가 그 단절어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살펴볼 수밖에 없다. 앞뒤 문맥을 참작할 때 성령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예수님께 귀신이 붙었다느니(22ㄱ절)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느니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은 결국 그분에게 작용하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독성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단절어 변체가 어록에도 전해오는데

여기서는 그 뜻이 한결 분명히 드러난다. 우선 루카 12.10을 따라서 어록의 말씀을 소개하면 이렇다. “누구든지 인자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 뜻인즉 지난날 예수님이 이승에서 활약하실 때 그분을 불신한 죄조차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이제 성령이 작용하는 초대교회의 선포마저 불신한다면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시대와 성령시대(교회시대)를 구별하면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말이겠다.

 

30

다섯 가지 전승요소를 수집해 놓은 집성문은 그는 베엘제불에 사로잡혀 있다”(22ㄱ절)로 시작하여 그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다”(30)로 끝맺는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우리 집에는 일정한 기간이 되면 보건소에서 방문 진찰을 합니다.  저로서는 감사할 일 입니다.

그런데 방문하는 사람은 간호사인데  우리집의 성모상과 십자가를 두고 아무런 말을하지 않습니다. 그가 개신교의 철저한 믿음의

사람인데두요.  어떤 날은 스스럼없이 우리들의 손을 잡고 기도도 합니다.  개신교 다니는 사람이 어떤 거림낌없이 손을 

내밀어 기도하자고 할때 고마움마저 일더군요.  

 

어제는 집에 방문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갔습니다. 

제가 "우리 천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기도하며 지내는 날입니다." 하고 말하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군요.  싫다는 표정도 아니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구나." 하는 표정만 짓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성탄절쯤에 방문을 하였는데 "성당에서는 구유를 꾸미고 그것을 믿는다"고 하며 증거물이라고하며 

그 구유의 사진을 보여주더군요.

저는 그러한 말을 들으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것이 무엇을 꾸며서 믿는다는 것이 왜인지 알겠지요?"

하며 짤막한 화살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 방문시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시 손을 잡고 기도를 바랬으나 

그런 기도와 말도 하지 않더군요.  

 

오늘은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화를 한참을 들여다 봅니다. 교회에 열심한 간호사가 오늘은 그 성화를 보고

'무슨 말을 할까하?'하며 기대해보았는데 .......

 

또 다른 어떤 친구는 아내가 교회의 권사가 되었다고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더라구요.  "평생을 그렇게 권사로 지내느냐?" 하고 

물어 보았더니 그런다고 하며 반가움의 표시를 합니다.  

무엇인가 교회에서 감투를(?)를 주면 그에 맞갖는 언행을 조십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며 반가워합니다.

 

그럼 나는 가톨릭인으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며 묵상을 길게 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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