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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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 기해박해 180주년 댓글 이벤트 - 이성례 마리아 편

2019-10-21 ~ 2019-10-27

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19-10-21 ㅣ No.10648

기해박해 180주년 댓글 이벤트 - 이성례 마리아 편

 

 

  기해박해는 4대 박해 중 신유박해 이후에 전국적 규모로 일어난 두번째 박해다.

  1839년 4월 ‘사학토치령(邪學討治令)’이 공식 반포되면서 대대적인 천주교 신자 탄압이 시작됐다.

  전국적인 박해는 184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 신부 등 조선 교회 핵심 지도자들이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다.

 

 

※ 여덟번째 편: 이성례 마리아(1801-1840년) 

 

기해박해 180주년을 맞아 굿뉴스는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11월 3일까지 매주 한분의 성인을 소개하고 그분의 삶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 가톨릭성인 >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복자 이성례 마리아 편

 

       

    이성례 마리아는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아내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이다.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그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사촌 누이인 이 멜라니아의 조카딸이었다. 모태신앙인으로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앙을 간직하였다가 18세 때 최 프란치스코와 결혼하여 서울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기해박해로 순교하기까지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기록에 따르면 이 마리아는 교리지식이 출중하거나 글재주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기해일기'의 기록이나 최양업 신부의 서한 등에서도 이 마리아를 평할 때 특정 지식적인 부분이 언급되기보다는 자신보다 4살 어린 남편을 잘 보좌하였다거나 집안을 돌보는 일에 힘썼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설령 글을 잘 몰랐다고 해도 그의 신앙에 부족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마리아 신앙의 주된 덕목은 인내와 권면이었다.


   잦은 이사와 궁핍한 처지를 이겨내다

   홍주에서 서울로, 다시 오래지 않아 이 마리아 가족은 다시 강원도 김성과 경기도 부평의 산간 지대를 거쳐 1838년경 과천의 수리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일구었다. 잦은 이사에 흉년이 겹쳐 이성례 마리아는 궁핍함과 싸워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원망하는 마음 하나 없이 기쁨으로 모든 고통을 감내하였다고 한다. 󰡔기해일기󰡕에 따르면 이 마리아는 이런 고난을 마지못해 받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 주 예수의 거룩하신 가르침과 이전 성인들의 행실을 따르기 위하여 구하고 청해야 한다면서 큰 영광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어린 자식들이 배고픔과 고통을 호소할 때마나 이승에서의 고통은 잠시 뿐임을 상기하며 후세의 영원함과 예수의 표양을 강론하면서 권면하였다고 한다. 궁핍함 속에서도 이 마리아는 남편과 더불어 40일 금식할 때 양식과 전량을 모았다가 가난한 교우를 돕고는 하였다.


   권면과 인내의 신앙인

   이성례 마리아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남편을 여의고 살아남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녀의 가족들은 순교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7월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 마리아의 담대함과 권면하는 마음은 체포 장면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포졸들이 집을 덮쳤을 때 조금도 소란을 피우지 않고 남은 물건들 중에 무엇이든지 좀 좋은 것들을 모아서 싸고는, 포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먹였다고 한다.


   모성으로 인한 배교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운 장면을 뒤로한 채 이 마리아와 그의 가족은 포도청에서 혹독한 고초를 겪어내야만 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마리아는 300대 이상의 곤장을 맞았지만 그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함께 체포된 어린 자식들이 더러운 감방에서 굶어 죽어 가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이성례 마리아 가족은 총 다섯 명이 함께 체포 투옥되었는데 그중에서 큰아들인 최의정 야고보가 열네 살이었고 막내가 겨우 두 살이었다. 이 마리아는 자신과 남편의 순교는 기쁘게 맞이할 일이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것들이 고통스러움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차마 지켜보기 힘들어하였다. 더구나 막내 아이는 아직 젖도 채 떼지 못한 채였다. 특히 기억할 것은 어머니로서 이 마리아가 세상에 듣게 된 비난이었다. 최양업 신부는 훗날 서한에서 당시 자신의 어머니가 당했던 모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외교인들 중에는 너무나 끔찍하게 여겨 “이 몹쓸 모진 년들아, 이 인정사정없는 독한 년들아,

          그 연약하고 애처롭고 귀여운 어린것들을 데리고 어떻게 죽음을 자청하러 간단 말이냐?”

          하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마음이 황폐해진 이 마리아는 배교하는 말을 하고 감옥에서 나왔다. '기해일기'에는 이 마리아의 다음과 같은 다짐이 새겨져 있다.


          “아무쪼록 살아나와 이 여러 어린 것의 영육을 돌아보리라.”


   이것이 실제 이성례 마리아의 육성이었는지는 확증할 수 없지만 눈물겨운 배교를 선언할 때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그가 배교를 결심한 것은 신앙심이 약해져서도 아니고, 곤장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오직 자식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과 사랑이었다.


   두 번째 체포 그리고 회심

   그러나 이성례 마리아의 이러한 애처로운 결심조차 뜻대로 될 수가 없었다. 신학교 교육을 받기 위해 떠난 아들 최양업 신부에 관한 사실이 탄로나 다시 체포되어 형조로 이송되었던 것이다. 그때 거기에 함께 갇혀 있던 용감한 신자들의 권면은 이 마리아의 회심에 큰 역할을 하였다. 전에 그르친 것을 통회하고 관아에 선포함으로써 위주치명하면, 세옥과 지옥을 함께 면할 수 있으리라. 함께 천당에 올라 대부모를 뵈옵고 모든 성인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자. 이 마리아는 주변 교우들의 권면에 힘입어 배교를 취소하고 영광스럽게 순교하도록 결심하는 용기를 보였다. 이제 그는 젖먹이 막내가 옥중에서 숨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도 끝내 순교의 본 뜻을 잃지 않는 용기를 보여 주며 기쁜 마음으로 형장에 나아갔다. 39세 되던 해인 1840년 1월 31일 서울의 당고개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세상의 모욕과 빈정거림을 감내한 위대한 어머니

   복자 이성례 마리아는 세상의 모욕과 빈정거림을 감내한 위대한 어머니이다. 어린아이들까지 형장에 끌려와 고통을 당하게 된 일이 어머니로서 이 마리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어린 아이들과 함께 투옥되었을 때 감내해야 했던 주변의 욕설과 비난은 어머니로서 진정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어려웠던 배교 결정을 다시금 당당히 회심하였던 것 또한 진정한 용기였다. 함께 투옥된 이들의 권면이 큰 힘을 발휘하였던 것은 물론이나, 한 차례 저지른 잘못된 결정을 두고 아집에 빠지지 않고 번복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녀의 신앙의 발로였다.


   또한 그는 ‘무식하다’는 빈정거림의 대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포도청 투옥 당시 포졸들은 남편 최경환 프란치스코에 이어서 이 마리아에게 천주교 교리서를 읽어보라고 시켰으나 글을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관원들은 “아니 저렇게 훌륭한 회장의 부인이 글을 읽을 줄 모른다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빈정거렸다. 그녀가 진정 글을 전혀 몰라 읽기를 거부하였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굳이 그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이 마리아가 평생 받아왔을 손가락질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날 우리들조차 지식이 부족했던 신앙의 선조들에 대해 꽤나 모질지 않은가. 고난과 궁핍함 속에서도 남편을 도와 가정을 건사하였고, 훌륭히 아이들을 키우며 마침내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이끌었던 어머니들을 우리는 너무도 몰라주고 있지 않은가.


   너무나도 어머니다웠던, 또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던 이성례 마리아에게 어찌 그리 연약했느냐고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위대한 어머니이자 온전한 신앙인이었던 그를 복자품에 올린 교회의 결정은 옳은 것이었다. 기해박해를 기억하는 중에 이번 한 주간은 위대한 어머니, 온전한 신앙인, 복자 이성례 마리아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함께 기억하며.

  

   [자료 제공 : 한국교회사연구소]

  

 

 

 ※ 참고자료: 가톨릭 성인 > 이성례 마리아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가운데 추첨하여 한주에 10명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교회와 역사>를 3개월분(10월~12월) 무료로 우송해 드립니다.

또한, 한 달에 다섯 분을 추첨하여 <기해병오 박해 순교자 증언록> 영인본 1세트(15만원 상당)를 보내드립니다. 

 

* 참여방법: 위 성인의 글을 읽고 묵상글을 적어주세요.

* 이벤트 기간: 9월2일(월)~11월 3일(일)

* 이벤트상품: 한주에 10명 - 월간지 <교회와 역사>,

                      한달에 5명 - <기해병오 박해 순교자 증언록> 영인본 1세트(15만원 상당)

* 당첨자 발표: 11월 5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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