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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준 [nolguitneyo] 쪽지 캡슐

2014-06-13 ㅣ No.60541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문화]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바빌론 대제국
작성자   주호식(jpatrick)  쪽지  번  호   638
작성일   2004-11-07 오후 6:40:31 조회수   656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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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풍속]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바빌론 대제국
 
 
(사진설명)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유다인들, 부조작품.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시편 137,1-6 참조).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절한 삶이 배어있는 시편 구절이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이 시편을 읊으며 자신의 비참한 역사를 기억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역사를 떠올리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남북이 분리된 후 남쪽 유다 왕국은 북 왕국 멸망(기원전 722년께) 후에도 존속했다. 남쪽 왕국은 수도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종교적 중심이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초대 왕으로 20명이 왕위를 계승하여 남쪽 유다 왕국을 지배하였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은 신 바빌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2세(기원전 604∼562년)에 의하여 사상 유례없는 침략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도시 전체는 약탈당했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왕족과 귀족들뿐 아니라 많은 일반 백성들도 학살당했다.
 
그리고 수천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붙잡혀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바빌론까지 약 1300㎞에 이르는 죽음의 길을 끌려가야 했다. 포로 중에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키야도 있었다. 바빌론 병사들은 시드키야의 눈을 도려내어 장님을 만들었다. 당시 전쟁에서 패배한 자에게는 눈을 빼내고 입술에 고리를 끼우는 무서운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바빌론에 의해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바빌론은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친 나라였다. 성서에서 바빌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바빌론은 현재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하류 유역에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의 지역이었다. 특히 바빌론 제1왕조의 여섯번째 왕인 함무라비는 가까운 이웃을 평정하여 엘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또한 그는 중앙집권제도를 확립하고, 수도 바빌로니아에 성벽을 쌓고 각지의 신전을 재건했다. 그리고 교역에 필요한 운하를 파고 도로도 정비해 무역이 융성하게 이뤄짐에 따라 국력이 충실해졌다.
 
이 국력을 바탕으로 그는 고대 근동에서 통용되어 오던 법전을 집대성해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해냈다. 이 시기에 바빌론 제국은 아시리아도 점령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바빌론은 명실상부한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서 번영하였고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그 러나 기원전 1530년 무렵 히타이트인의 침입으로 결국 바빌론도 멸망하였다.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 후에 신 바빌로니아 시대가 성립하여 번영을 되찾았다. 그러나 1세기도 채 못된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멸망되고 말았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은 침략을 받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신앙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왜 약속의 땅이 적의 손에 넘어가고 하느님은 자신들을 버렸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부딪혔던 것이다.
 
이처럼 이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최악의 고난 시대였으나 또한 동시에 종교적으로도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대였다. 많은 위대한 예언자가 배출된 것도 바로 이 시대였다. 인간의 역사는 풍요와 안정이 꼭 발전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신앙적 의미에서는 더 그렇다.
 
<평화신문, 제737호(2003년 8월 2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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