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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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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완벽한 평화주의자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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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13-06-27 ㅣ No.590928



완벽한 평화주의자 예수님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를 회상하며, 평화 통일을 꿈꾸며, 평화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지난겨울 한 열차 역에 내렸을 때의 일입니다. 마침 기온이 급강하한데다 눈까지 내려서 새벽 역사안의 기온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몇몇 노숙자 형제들은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화장실 안까지 들어오셔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아는 얼굴은 없나?’ 해서 한분 한분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얼마나 달콤한 단잠에 빠져있었는지? 잠자는 얼굴들은 또 어찌 그리도 평화로운지요? 당시 저는 갑자기 들이닥친 몇 가지 고민거리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그분들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행복지수, 내적인 평화에 대한 충족도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고하 여부와도 다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72제자들을 당신에 앞서 사람들 가운데 파견하시면서 지상과제를 부여하시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그리고 플러스알파로 또 다른 과제 하나를 주시는데, 그것은 세상 사람들 앞에 평화의 사도로 존재하라는 사명입니다. 갖은 걱정과 근심, 불안 속에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평화의 사도가 될 것을 당부하십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그런데 이웃들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 평화를 건네는 사람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 한 가지가 있는데, 나 자신 안에 먼저 평화를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의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먼저 고요와 평정 안에 깊이 머물면서 평화를 만끽하고 있어야 그 평화를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은 갖은 인상을 다 써가면서, 갖은 고뇌로 가득 차있으면서 이웃들에게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하고 인사를 건넨다면 인사말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웃을 것입니다.

 

평화의 사도로 존재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인 일은 예수님의 권고말씀처럼 보다 많이 버리는 일입니다. 보다 자주 떠나는 일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욕망도 버리고, 슬픔조차 버리고, 버렸다는 그 마음조차 버릴 때 우리는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버리고 버려서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어지는 그 순간, 그 버린 공간에 주님의 참 평화가 서서히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만물, 모든 존재, 매 순간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 은혜로움과 감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평화의 원천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고통과 절망, 두려움과 의혹 그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도 오직 주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분께 우리 존재 전체를 내어맡길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이고 그 순간 얻게 되는 평화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입니다.

 

이 세상 어딜 가도 서정적인 영화나 배경이 아름다운 드라마를 보는듯한 완벽한 평화란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굳건히 자리 잡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놓는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평화입니다. 그분이 계심으로 인해, 그분이 우리 인생의 중심이 됨으로 인해 누리게 되는 위로 그것이 참 평화의 원천입니다.

 

복음서 전반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유다인들은 다윗가문에서 출생한 메시아, 힘과 능력을 갖춘 정치인으로서의 메시아, 결국 로마의 압제로부터 민족들을 해방시켜줄 해결사로서의 메시아, 그래서 이스라엘을 온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하는 정복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허무맹랑한 기대를 무너트리십니다. 그들의 그릇된 메시아관에 반박하십니다. 당신은 철저하게도 비폭력주의자로 처신하십니다. 완벽한 평화주의자로 살아가십니다.

 

참된 메시아는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하는 왕입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이집트뿐만 아니라 온 세상 전체를 다스리실 왕 중의 왕이십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잠시 지나갈 이 현세에 기반을 둔 왕이 아니라 영원한 도성,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기반을 둔 왕이십니다. 만왕의 왕은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왕,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그런 왕이 절대 아니셨습니다. 거듭되는 폭력과 압제, 비인간화 앞에서도 끝까지 견뎌내며, 끝까지 용서하며, 박해자마저 사랑으로 감싸 안은 사랑의 왕이셨습니다.

 

이제 권력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인간이나 세상을 지배되는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늘 대화하면서 타협점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조금씩이나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시간이 좀 걸린다 할지라도 앞뒤 정황을 잘 따져본 다음, 물러설 것은 크게 물러서고 양보하면서 대화로 일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이야말로 복음적 노선이며 비폭력 노선의 바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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