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30일 (일)
(백) 부활 제3주일(이민의 날)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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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8 - 연중 제6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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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2-18 ㅣ No.110169




2017
02 18 () 가해 연중 제6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히브리서 11,1-7
마르코복음 9,2-13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 세 명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그분의 모습이 변한 이야기였습니다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그분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베드로는 그 자리에 초막 셋을 지어예수님모세엘리야를 모시고 살겠다고 제안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 제안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고 지적합니다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어서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변명도 해줍니다복음서는 이 이야기로써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말합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사실(史實)만을 알려주는 역사서가 아닙니다복음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신앙인들이 그분에 대해 가졌던 믿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문서입니다.

오늘의 복음이 언급하는 높은 산예수님의 모습이 변한 것옷이 빛나고 흰 것구름 속에서 나는 소리 등은 구약성서가 하느님이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말할 때이미 사용한 표상(表象)들입니다오늘 복음이 구약성서의 그런 표현들을 가져와 이야기를 꾸민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일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회상합니다그들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닮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그래서 오늘 복음은 모세와 엘리야를 등장시켰습니다모세는 하느님에 대해 깨달아서 이스라엘 신앙의 시조(始祖)가 된 분입니다엘리야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와 예언자들만으로써 설명이 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그래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예수님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닮은 분이지만그것만으로 예수님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고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보태어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깨닫고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그는 이집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하느님이 세상의 권력자인 왕 파라오와 함께 계시지 않고천대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체험하였습니다그는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믿고이스라엘 사람들을 지도하여이집트에서 탈출을 감행하였습니다그 거사(擧事)의 성공은 하느님이 과연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해주었습니다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그런 해방과 구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느님은 함께 계실 뿐 아니라사람을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하신 분”(탈출 33,19)으로 체험되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행하신 일들이 과거 모세가 깨달은 하느님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하신’ 하느님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마귀를 쫓으며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그것은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한 일들이었습니다예수님은 병을 고쳐주고죄책감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자유롭게 또 보람 있게 살도록 해주셨습니다예수님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것은 선하신 하느님의 일을 사람들도 실천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언자는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하느님에 대한 말이 왜곡되었을 때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입니다그들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원초의 체험으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었습니다왕과 사제들은 그 사회의 기득권자들입니다그들은 하느님을 빙자하여 치부하고대우받기를 원하였습니다그들의 횡포에 맞서서 그들을 비판하고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을 선포한 사람들이 예언자들입니다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회상하면서 그분 안에 과거 예언자들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그 시대 유대교의 율사와 사제들은 하느님을 빙자하여 사람들 위에 군림하였습니다그들은 율법과 성전을 절대적인 것으로 강조하면서가엾이 여기는 선하신 하느님을 은폐하였습니다그들은 율법과 성전의 제물봉헌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하느님이 벌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심판하실 무서운 하느님을 말하면서그들도 남을 심판하는 높은 신분이 되었습니다예수님은 “무겁고 힘겨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 어깨에 지우고 그들 자신은 그것을 나르는 데 손가락 하나 대려 하지 않는다.(마태 23,4)고 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율법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사람들이 자각하고선하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게 하는 지침이었습니다성전은 하느님이 백성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건물이었습니다그러나 율법과 성전이 사람을 단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그것들은 하느님을 알리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짐스런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체험하고 가르친 하느님을 깊이 믿으셨습니다그리고 과거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잘못된 신앙을 비판하는 데에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듯이예수님도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고그분의 일곧 하느님 나라의 일을 실천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예수님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그분의 일을 온 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습니다그분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습니다아들은 아버지보다 자기 자신을 더 내세우지 않습니다예수님은 군림하려 하지 않고섬기는 아들이었습니다그분은 당신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실제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우리의 자유 안에 하느님을 살아 계시게 하는 운동입니다나 한 사람 잘되기 위해 쓰라는 나의 자유가 아닙니다그것은 동물이 지닌 자유입니다인간에게 그런 자유는 이기적인 아집(我執)이라 일컬어집니다오늘 우리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것은 자기 한 사람혹은 자기가 속하는 집단을 위한 아집입니다자기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득권자들의 오만방자한 횡포가 사회에도교회 안에도 있습니다우리를 실망시키는 것들입니다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읽어낸 자유를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그것은 선하신 하느님의 자유입니다하느님을 믿는 것은 이기적 아집을 벗어나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하신 하느님의 자유를 배워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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