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새 사제부제 축하의 글 새 사제/부제께 따뜻한 사랑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제와 버스 기사

스크랩 인쇄

손희송 [hsson] 쪽지 캡슐

2000-12-11 ㅣ No.89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새 사제들에게

   한국에 있었다면 서품식에 참석해서 마음껏 축하해주겠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럴 수가 없네요. 다행스럽게 굳 뉴스에서 새 사제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해주는 코너를 마련했기에, 이렇게나마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떤 사제가 되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신학교 강의 시간이나 영성 훈화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 잘 알겁니다. 이제부터는 아는 바를 철저히 삶으로 옮겨야하겠지요. 그 동안 내 자신 사제로서 살아오면서, 또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생각해왔던 사제상을 짧은 글에 담아보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축하의 마음을 담아서 여러분 각자에게 작은 선물로 드립니다.

 

토론토에서

손 희송

 

----------------------------------------------------------

 

사제와 버스 기사

    

   

   한국 천주교회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직자들에 대한 존경심과 기대가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오늘날도 가톨릭 신자들은 성직자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많은 요청을 합니다. 1998년 가톨릭 신문에서 창간 70주년 기획 특집으로 마련한 조사에는 우리 한국 교회의 신자들이 바라는 성직자의 모습이 다음과 같은 순위로 나타났습니다. 기도하고 영성이 깊은 사제, 겸손하고 자상한 사제, 헌신적이고 봉사적인 사제, 폭넓은 지식과 안목을 갖춘 사제, 검소하고 절제 있는 생활을 하는 사제. 이런 바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를 흔히 착한 목자에 비유하지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 자신을 착한 목자에 비유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0,7-16).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에 흔히 볼 수 있는 양치는 목자를 비유로 삼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고 예수님과는 다른 문화권에 사는 우리에게는 목자라는 직업이 더 이상 가깝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제에 대해서 목자 외에 다른 비유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종 중의 하나인 버스 기사 비유해서 현대에 요구되는 사제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십 수년 사이에 자가용이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서민들은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버스는 남녀 노소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버스 기사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버스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남녀 노소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사제는 자기 혼자만 즐기기 위한 경기용 자동자, 스포츠 카의 운전자나 부자만을 위한 고급 승용차 기사가 아니고, 모든 사람을 위한 버스 기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제는 원하는 사람 모두를 차에 태우는 버스 기사처럼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 역시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모든 이를 구원되기를 원하셨습니다.

     

   2) 그런데 버스에 노약자를 위한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친절한 버스 기사는 노약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면 승객들에게 권고를 해서라도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모든 이를 위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특별히 늙고 병들고 약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3) 버스 기사는 기분 내키는 대로, 자기 편한 대로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노선을 충실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노선을 따라 가면서 승객들이 불안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합니다. 출퇴근 시간에 차가 밀린다고 짜증을 내며 난폭 운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버스 기사가 기분 나는 대로가 아니라 정해진 노선대로 운전하듯이, 사제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최고의 규범으로 삼고 사셨듯이 사제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버스가 규정된 노선을 지키지 않고 난폭하게 달린다면 승객들이 불안에 떨게 되듯이, 사제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길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산다면 신자들에게 두려움과 괴로움을 안겨 됩니다. 그런 사제라면 나중에 예수님께 큰 야단을 맞을 것입니다.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루가 12,42-48).

 

     4)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지켜가면서 정류장마다 정차해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태우고 갑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인생 곳곳에 서있는 이들을 교회라는 버스에 싣고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로 향합니다. 시간에 쫓긴다고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서 간다거나 뛰어 오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냥 출발해 버린다면 좋은 기사가 아닙니다. 좋은 버스 기사는 조금 늦게 오는 승객들을 친절하게 기다려 주듯이, 좋은 사제라면 인생 여정에 곳곳에서 신앙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언제라도 문을 활짝 열어주고, 조금 늦게 오는 이들을 짜증내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침 일찍 온 일꾼이나 저녁 무렵에 온 일꾼이나 똑 같이 대우해 주시는 분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 20,1-16). 또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음에 임박해서 자비를 구하는 죄인 받아 들이십니다. "진실히 당신에게 이르거니와, 당신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루가 23,40-43). 이렇게 예수님도 늦게 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제라면 당연히 그분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5) 버스 기사가 출발 전에 버스를 잘 점검하고 기름도 충분히 넣어 두는 것은 기본적 준비에 속합니다. 중간에 기름이라도 떨어져서 버스가 서 버린다면 곤란한 일이지요. 마찬가지로 사제도 자신의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 평소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도와 영성 생활이 바로 그것 입니다. 외적인 활동과 취미 생활에 정신을 빼앗겨서 기도와 영성 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언젠가는 기름이 다 떨어진 버스처럼, 고장난 버스처럼 중도에 서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식사마저 하실 수 없이 바쁜 중에서도 새벽이나 밤늦게 홀로 기도하셨다고 성서는 여러 번 전합니다. 그분께서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주셨고, 당시 종교 지도층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꿋꿋하게 수행하셨는데, 이런 삶의  원동력이 바로 기도에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항상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여 사셨기 때문에 엄청난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예수께서는 제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으로서 기도 없는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나갈 수 없습니다.

 

    6) 버스 기사는 운전석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오후나 밤 시간에는 피곤에 지쳐서 졸음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옆에서 지켜봐 주고, 피곤하고 졸릴 때에는 말이라도 붙여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인생의 반려자가 없이 홀로 살아야만 합니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제세마니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을 때 같이 왔던 제자들은 잠이 들어서 혼자 기도하셨습니다(마르 14,32-41). 또 십자가 죽음을 당하기 전에 유다인들의 원로들과 빌라도 총독 그리고 헤로데 왕에게 심문 받으실 때에도 혼자이셨습니다(루가 22,66-23,12).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굳게 믿으셨기에 그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제 역시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게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시고 신자들의 기도와 격려가 항상 뒤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버스의 기사는 사제이고 승객은 신자들입니다. 이 버스의 종점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이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이 버스에서는 노약자석이 유명 무실하지 않습니다. 기사인 사제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길이 막혀도 인내롭게 종점을 향해 갑니다. 승객인 신자들은 버스 기사가 운전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버스 기사는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게 자신을 인도해주는 운전 기사,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능한 분에게서 위로와 힘을 거듭 얻습니다.

 

 

   



2,291 1

추천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