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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끊임없는 '질투/시기' 번역오류 주장에 대한 의문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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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선 [lbs] 쪽지 캡슐

2014-02-13 ㅣ No.760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 글은 성경, 교리서의 번역오류 여부를 가르는 문제이므로, 우리말/ 라틴어/영어 교리서가 자료로 사용되었고, 성경본문인 히브리어, 그리스어 단어가 등장합니다. 외국어가 난립하여 복잡해 보여도, 두 단어의 구분이니만큼 색깔만 따라가셔도 됩니다. envy 와 관련된 단어는 초록색이고, jealousy와 관련된 단어는 파란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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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태님의 주장에 대한 의문점들

 

 

 

아래 두 글을 통해, 소순태님이 주장하셨던 <반드시 질투 = envy, 시기 = jealousy 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오류> 라는 이분법적인 이론을 형성한 배경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래 글상자의 글중 빨간색 네모칸은 편의상 제가 그은 것임.)

 

       

 

 

<소순태님의 주장글 1>

 

   

<소순태님의 주장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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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장에서, 눈에 띄는 서술어들이 있어서 빨간 네모를 쳐봤습니다.

 

 

1. ...배제되었다는 생각입니다...

2. ...신부님들이 역경 즉 ,주역을 틀림없이 학습하셨을 것이고...

3. ...알게 되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위의 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envy’ 의 차용용어로 질투(嫉妬)’로 선택된 이유와,  jealousy’의 차용용어로서 시기(猜忌)가 채택된 이유는  소순태님의 정황상 판단, 즉 소순태님의 '추측'과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추측 위에다가 "이것 저것 심지어 불경, 주역책까지 끌어다 이론적 배경을 삼으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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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 가톨릭 용어 자료집에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출처:http://masscom.cbck.or.kr/neorix/up_files_board/code_2/20110107150123.pdf>

 

 

  

소순태님의 혼란의 단초는 우리말의 기준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질투시기의 의미를 섞어 놓아

두 단어 구분이 딱 떨어지게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위 에서 ③번을 보면,   시기(질투) [] invidia [] envy   라고 제시되어 있는데,

저는 위의 제시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 근거하여

  시기’ 와 조금 작은 글씨로 (질투) 라고  같이 쓴 것을

시기와 같은 뜻인 질투2의 병행단어 로 이해하였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제시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ㅍ

 

<표준국어대사전 :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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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태님의 주장글 3>

 

(*보라색 밑줄은 제가 편의상 그은 것임)

 

     

     

 

===> 

위에서 주장하신 것처럼, <envy = 질투, jealousy = 시기> 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절대적으로 맞는 것이라면, 다른 데에서도 절대적으로 같아야 할 것입니다.

  

 

 

소순태님이 제시하신 교리서 1866항 보겠습니다.

(우리말/ 라틴어 /미국 교리서 순)

 

  1866 악습들은 그와 반대되는 덕에 따라 분류할 수 있고, 또 죄종(罪宗)과 연관시킬 수 있다. 죄종(peccata capitalia)은 요한 카시아누스 성인과102)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103) 뒤를 이어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으로 식별되었다. 이 악습들을 죄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들이 다른 죄들과 악습들을 낳기 때문이다. 죄종은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이다.

 

 

 

 

  1866 Vitia possunt statui secundum virtutes quibus adversantur, vel etiam ad peccata capitalia reduci quae experientia christiana, sanctum Ioannem Cassianum et sanctum Gregorium Magnum secuta, distinxit. Capitalia appellantur quia alia peccata, alia vitia generant. Sunt superbia, avaritia, invidia, ira, luxuria, gula, pigritia seu acedia.

 

1866 Vices can be classified according to the virtues they oppose, or also be linked to the capital sins which Christian experience has distinguished, following St. John Cassian and St. Gregory the Great. They are called "capital" because they engender other sins, other vices. They are pride, avarice, envy, wrath, lust, gluttony, and sloth or acedia.

 

<출처: http://www.scborromeo.org/ccc/para/1866.htm>

  

===> 

 *   질투 = invidia =  envy

 

 

 

비교를 위해 교리서 2737항도 보겠습니다.

 

 

  2737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2-3).23) 만일 우리가 절개 없는 자들로서24) 갈라진 마음으로 청한다면, 우리의 행복을 원하시고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야고 4,5)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질투를 느끼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표징이다. 그분의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우리의 청원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2737 “Non habetis, propter quod non postulatis; petitis et non accipitis, eo quod male petitis, ut in concupiscentiis vestris insumatis” (Iac 4,2-3). Si corde petimus diviso, “adultero”, Deus nos exaudire nequit, quia Ipse nostrum vult bonum, nostram vitam. “Aut putatis quia inaniter Scriptura dicat: "Ad invidiam concupiscit Spiritus, qui inhabitat in nobis"-” (Iac 4,5). Deus noster est zelotes nostri, id quod signum est veritatis amoris Eius. Ingrediamur in desiderium Spiritus Eius et exaudiemur

 

2737 "You ask and do not receive, because you ask wrongly, to spend it on your passions." If we ask with a divided heart, we are "adulterers"; God cannot answer us, for he desires our well-being, our life. "Or do you suppose that it is in vain that the scripture says, 'He yearns  jealously over the spirit which he has made to dwell in us?'" That our God is "jealous" for us is the sign of how true his love is. If we enter into the desire of his Spirit, we shall be heard.

 

<출처: http://www.scborromeo.org/ccc/para/2737.htm>

    

===> 

 *열렬히 = invidiam =  jealously  ???

 (참고:  우리말,  '성경'은 '열렬히'로,   '성서'에서는 '질투'로 번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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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서 1866항과 2737항 두가지를 놓고 비교해보니, 의문사항이 생깁니다.

 

 

(1) envy jealousy가 서로 '상호불가침' 단어라면,  미국교리서(CCC)에서는 왜 두 단어를  서로 바꿔서 번역해 놓았을까요??

    

 

* 1866항: 라틴어 교리서에서의  invidia 가 미국 교리서에서는 envy 라고 번역되어 있었고, 

* 2737항: 라틴어 교리서에서의  invidiam 이 미국 교리서에서는 jealously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 2737항에 인용된 야고4,5 에 나온 그리스어 본문 단어는

envy / invidia 의 의미인 g5355    φθ?νος    phthonos 이므로,  그리스 본문과도 상충되게 번역되어 있는 것입니다.

* 소순태님의 논리대로 라면, 2737항은 반드시 envy 로 번역해놨어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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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nvy jealousy가 서로 '상호불가침 단어'라면,  미국 성경안에서 마저도 왜 두 단어를  서로 바꿔서 번역해 놓았을까요??

 

 

*야고보서 4,2 : [] zelatis [] g2206   ζηλ?ω   z?lo? ==> envy

 

*야고보서 4,5 : [] invidiam [] g5355   φθ?νος   phthonos ==> jealousy

  

 

<영어성경 출처: http://www.usccb.org/bible/james/4> ☜ 클릭!  2절과 5절을 확인하시길.

 

<그리스어 성경 출처 http://www.blueletterbible.org/Bible.cfm?t=KJV&x=-311&y=-2279&b=Jam&c=4&v=1#s=t_conc_115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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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vidia /phthonos 라는 뜻이 남을 해친다는 의미이고, 칠죄종의 하나이며, 하느님께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부정적인 의미인 단어 이기만 하다면,

성경(야고4,5)과 교리서(2737)에서는 어떻게 감히 하느님께 쓸 수 있었을까요??

 

 

*야고보서 4,5 : [] invidiam   [그리] g5355    φθ?νος    phthonos

 

*교리서 2737:[] invid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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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태님의 주장글 4>

  

   

 

===> 

질투(envy)의 의미인 그리스어 단어(phthonos) 는 항상 어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심어주신 영혼을 질투하실 만큼 사랑하신다." 사랑의 의미로 쓰인,

교리서 2737항과 성경 야고보서 4,5에 쓰인 단어(phtohonos)의 의미는

부정적인 의미일까요? 아니면 긍정적인 의미일까요?

 

이러한 구절들이 바로 소순태님의 이분법적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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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순태님의 주장글 5>

  

 

 

 

성경 본문(本文)을 각기 자기나라 지역언어로 번역할 시,

그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통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기준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혼란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는다.”

라고 성경 일러두기에도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소순태님은 그동안 교회문헌들을  영어’에다 기준을 두고서 이 글 저 글을 끌어다대며,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은 우리말 성경, 교리서, 교황청 문헌들이  번역오류라며 수많은 글들을 올리셨습니다.

    

 

그런데 윗글에서는 뜬금없이 국내의 저명한 국어국문학 분야 원로교수님의 견해를 근거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시기(猜忌)에 대한 설명이 [전와(轉訛),’어떤 말이 본래의 뜻과 달리 전해져 그릇되게 굳어짐된 경우]에 해당된다고 다른 주장으로 넘어갔습니다.

 

전와된  단어인 '시기(猜忌)' 때문에 그동안 우리말 성경, 교리서를 번역오류로 몰았다는 것은 오류 대상을 잘못 찾아도 너무 잘못 찾은 것입니다.

 

소순태님의 오류 주장은 결국 우리 성교회에다 대고 따질 일이 아니라, [전와]를 다룰 수 있는 기관인 국립국어원에 가서 따지셔야 했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소순태님,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성교회에 오류의 누명을 씌워왔다는 생각이 안드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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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우리들의 묵상 코너에서

'성경 말씀들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석은 어디에 주어져 있을까요?' 라는 제목하에 글을 올리셨더군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성교회의 자료를 끌어다 대시는데 다시 한번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교황 레오13세의  문헌  : 영원하신 아버지 -AETERNI PATRIS-   ☜ 클릭

 

 

글중 일부를  색칠해서 올리신 내용을 보니, 소순태님은 자신이 토마스 성인의 탁월한 해석을 통해 오류를 잡아 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

 

여기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해석'이라 함은 가톨릭 가르침에 대한 '해석'을 통해, 진리에 대항하는 오류를 잡아 내는 일을 말함이지, 거기에 씌여진 단어의 '번역' 오류를 잡아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번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살펴 보십시오.

 

가톨릭 진리에 대항하는 세력의 오류를 잡기 위해 토마스 성인의 '가르침의 해석'을 찾아 보았나? 아니면

번역 오류를 잡기 위해 단어만을 찾아 보았나?를...

 

 

  

 

<참조>

* 해석 (解釋) (interpretation)

1문장이나 사물 따위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함. 또는 그 내용.

2사물이나 행위 따위의 내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일. 또는 그 내용

 

* 번역(飜譯/?譯) (translation)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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