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30)

스크랩 인쇄

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0-05-30 ㅣ No.138595

2020년 5월 30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28,16-20.30-31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7 사흘 뒤에 바오로는 그곳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이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백성이나

조상 전래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예루살렘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18 로마인들은 나를 신문하고 나서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19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내 민족을 고발할 뜻이 없는데도

하는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20 그래서 여러분을 뵙고 이야기하려고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30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복음 요한 21,20-25

그때에

20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나라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창 놀아야 할 어린이까지
이 경쟁의 무대에 올라가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각종 학원을 섭렵합니다.
신부가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서울에서 어떤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1등만이 기억되고 살아남았습니다.”
이 강사는 당시 유명한 컴퓨터 잡지의
사장님이었고, 실제로 이 잡지는 업계에서
 항상 1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잡지를
20년이 지난 지금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몇 년 뒤에 폐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2등이었지만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는 잡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출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등도 기억됩니다. 또 2등도
 살아남습니다. 1등만이 최고라
생각하는 경쟁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그리고 꾸준한가가 중요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반짝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신부님, 제가 그래도
 어렸을 때 복사도 서고 정말 열심히
성당에 다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은요?”라고 물으니, “지금은
사는 게 바빠서 못 다닙니다. 냉담 중이죠.”
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습니다.
신앙도 꾸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짝이는 1등보다, 그렇게 특출나게
보이지는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하면서 꾸준히 주님과 함께
하는 이를 기억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어떻게 되겠는지를 묻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 대해 부러운 마음에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요?
아니면 오지랖이 넓어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랬을까요?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후
베드로가 담대함을 지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교회의 반석이라는 영예를 얻었고,
또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이런 영광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냐고
자신이 직접 말하지 못하고,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물어보라고
시킬 정도로 소극적이었습니다.
 또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했던 그가 예수님께 다른 제자에 대해
직접 질문합니다.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족함 투성입니다.
그래서 지금 모습은 분명히 1등이 아닙니다.
그러나 꾸준히 주님의 뜻을 따라가면서
자기 자리에 충실할 때,
우리 역시 주님께서 기억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가 모두 편견을 비난하지만,

아직은 모두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

(H.스펜서)

편가르기는 이제 그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느 지역구에서

 여당 의원이 이겼습니다.

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지요.
‘하느님은 여당을 지지하는구나.’
여당 지지자는 기뻤고,

 야당 지지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구에서는

야당 의원이 당선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묻습니다.
“하느님은 어느 편이세요?”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 편이다.”
이럴 것 같습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상관없이 남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쳐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것에 너무 익숙합니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며

렸다고 말합니다.
이 모습이 하느님께 틀렸다며

따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하느님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정치 성향에 흔들리지 않으며,

외적인 모습, 소유하고 있는 부,

세상의 지위에도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유일한 흔들림은 ‘사랑’ 때문입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하느님은

계속해서 흔들리십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편 가르기보다 인간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완벽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완벽해질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797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