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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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사랑의 목자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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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7-22 ㅣ No.122135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

"사랑의 목자 예수님"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도 즐겁게

잘 지내셨나요?

요즘은 더워도 너무 덥죠?

밤에도 더워서 잠을 설치니까

다음날 활동하기가 더 힘들죠?

한 달은 지속될 것이라 하는데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의 독서들은 목자와

양떼에 대해 말하면서

특별히 목자의 태도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들의

일차적 대상은 목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독서들은

모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묵상하도록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누구나

그리스도로부터 세상에 파견된

하느님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였습니다.

하느님이 왕이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예언자와 판관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백성들은

주변 국가들의 침입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왕을 중심으로

국력을 모을 수 있는 왕정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염원에서

마지막 판관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느님께 백성들의 뜻을 전하자

하느님께서 왕을 허락해주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1독서는 유다왕국의 마지막 왕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경고의 결론 부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다의 왕들이 당신을

대신해서 목자가 양들을 보살피듯이

백성들을 잘 돌보라고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왕들은 하느님이

기대하셨던 백성을 위한

목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돌보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과중한

세금을 거두어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군대도 징집하고 왕궁을 짓는다고

강제부역에 동원시켰습니다.

백성들은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크게 실망을 했고

하느님께 대한 신앙도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약속에 희망을 두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약속을 전하며

희망을 가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정의와 평화를

안겨 주심으로써 성취됩니다.

안정과 평화에 대한 염원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인간이 자신과,

타인들과, 자연과, 하느님과

올바르고 조화 있는 관계를 이루어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평화는 항상 하느님께

그 원천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양떼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최상의 음식입니다.

따라서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지친 제자들을 위해서

쉴 장소를 찾아 가시다가도

목자 없는 백성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그들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알려 주시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며 그들의

영적 허기를 달래 주셨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떼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함께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을 가지고 거기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목자도 적절한 때에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이때의 휴식은 쉼 자체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정확히 알아듣고

묵상하며 마음에 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꾼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고

그대로 살도록 도와주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목자가 휴식 없이

활동에만 전념하다보면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뜻대로 양떼를

이끌고 가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에 새길

기도의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2독서에서 바오로는 이민족 출신의

신자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시대에 유대인들과

이방인 사이에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사람들 사이의 장벽과 갈등은

오늘날도 존재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같은 민족이면서

남북으로 갈라져 극한의

대립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즘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

기대를 하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종교와 종교 사이의 갈등 등등

세상에는 많은 장벽과 갈등의

골짜기가 존재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 장벽을 허물고 갈등을

없애줄 수 있는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무엇보다 하나가 되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분리의 장벽을 허물며

일치에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성호경을 바치며

십자가를 그을 때 먼저 위에서

아래로(즉 수직으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평으로) 긋습니다.

십자가는 먼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일치를 가져다줍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내려오셨기에

우리는 그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과 만나게 되고

그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치를 가져다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네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룸으로써

너와 나 사이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내가 그리고 너와 내가 만나고

참된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온전히 무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충만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을 다 내어주셨기에

우리가 충만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진정한 사랑을 체험합니다.

요즘 휴가철입니다.

우리에게도 휴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휴가를 다녀와서 사이가

더 나빠지는 가족들은 왜 그럴까요?

잘 놀고 와서는 피곤하다

짜증난다라는 말들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안 그래도 사람에 치여 사는데

휴가 때도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으로 가니까

진정한 휴식이 못되는 것입니다.

외딴곳 한적한 곳에서 가족이 말씀과

성체와 함께 지내는 휴가를 해보세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면서 그 사랑을 먼저 우리들

사이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 이번 한 주간도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효성 캠퍼스에서)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 드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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