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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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_송영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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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3-29 ㅣ No.171015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2-15).”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은,

‘새 계명’을 주신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앞의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준 것처럼”이라는 말씀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발을 씻어 주는 일’은 ‘사랑’을 ‘상징’하는 일입니다.

<그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가리키는 ‘사랑’이

중요하기 때문에, 발을 씻어 주는 일만 하면 사랑 실천을

다 한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상징은 상징일 뿐입니다.

사랑 실천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실행해야 하는 일이고(마태 22,37),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실행해야 하는 일입니다(마태 22,23).

발을 씻어 주는 일은 사랑 실천의 수많은 방식들 가운데에서

아주 작은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은,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주신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본을 보여 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신앙인들의 사랑 실천은 신앙인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일이 되고,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인도하는 일이 됩니다.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는,

“사랑 실천으로 신앙인이라는 것을 증명하여라.”입니다.

만일에 신앙인들끼리만 폐쇄적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단 이기심이고, 죄가 되는 일이고,

예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사랑에는 울타리도 담도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47)”

우리는 예수님께서 배반자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음을,

즉 당신을 이미 배반한,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하셨음을

기억해야 하고, 우리도 그렇게 실천해야 합니다.

 

2) ‘서로’ 라는 말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말입니다.

공동체는 사랑을 주기만 해야 하는 사람도 없고, 받기만 해도

되는 사람도 없는, 모두가 함께 사랑을 주고받는 ‘한 몸’입니다.

<‘사랑’이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도 되는 일도 아닙니다.>

‘주는 일’과 ‘받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사랑을 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일에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발을

동시에 씻어 주려고 한다면, 무척 복잡하고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먼저’입니다.

남이 먼저 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하면 됩니다.

그래도 또, 서로 먼저 하겠다고 나서면, 그것도

복잡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 먼저, 높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먼저,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후배보다 선배가

먼저, 식구들보다 가장이 먼저 실천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물이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리고 ‘모든 곳’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 사랑의 상징으로 ‘발을 씻어 주는 일’을

선택하신 것은 “사랑이란 ‘낮춤’이며 ‘섬김’이다.”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즉 세속 사람들의 사랑과는 달리

신앙인들의 사랑 실천은 낮춤과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낮춤’과 ‘섬김’이 없는 사랑은, 한쪽만의 일방적인 ‘좋아하는’

감정으로 그치게 되고, 소유욕이나 집착으로 변질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사랑이 아닙니다.

반대로, 사랑은 없이 낮추고 섬기기만 한다면,

그것은 아무 가치 없는 ‘굴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란, 스스로 낮추고 섬기고 내려감으로써

상대방과 ‘같아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처럼 똑같이

낮추고 섬김을 실천한다면, 누가 더 높지도 않고 더 낮지도

않은, 모두가 함께 똑같아지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렇게 모두 함께 낮추고, 모두 함께 섬기면서,

모든 사람이 똑같아지는 나라, 섬기기만 하는 사람도 없고,

섬김을 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는 나라입니다.>

 

[출처] 주님 만찬 성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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