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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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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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11-24 ㅣ No.6016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루가 21장 5-11절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요즘 우리 사회의 문화 안에서 눈에 띄게 우려되는 측면이 한가지 있습니다. 제가 가장 혐오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철저하게도 인간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조직폭력배들의 삶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의리"니 "우정"이니 뭐니 하면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자연스럽게 용인되고 미화되는 현상입니다.

 

그들은 이 시대의 암적인 존재들이지요. 그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은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파괴를 일삼으면서 살육을 본업 삼아 무위도식하면서 동물처럼 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가정과 공동체, 이 나라를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조폭들의 일상을 미화시키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많습니다. 그들은 이 시대 청소년들과 부모들에게 무릎꿇고 백배 사죄해야할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9시 뉴스를 보다가 기가 차서 할말을 다 잃었습니다. 현금지급기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 한 여성을 한 강도가 쇠파이프로 인정사정 없이 휘갈기는 광경이 여과 없이 그대로 방영되더군요. 피해자는 너무도 많이 맞아 혼수상태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그리도 철저히 파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구대천의 원수지간도 아닌데 말입니다.

 

때로 이 사회 안에 버젓이 그리고 당당히,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구조적인 사회악 앞에서 너무도 분노에 찬 나머지 할말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끝도 없이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양상을 더해만 가는 하위 문화의 구조 안에서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슬픈 눈동자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도 가슴아픕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하는 약육강식의 시대, 아비규환의 세상에서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들의 삶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안에서 빈자와 약자만을 골라 등을 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보통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접대문화 안에서 그저 하루 하루를 동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 부족한 소견으로도 이런 상황들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너무 화가 납니다. "도대체 이 세상이 어디까지 갈려고 이러나?"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귀신은 뭐하나? 저런 *들 데려가지 않고!"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느님은 도대체 뭐하시나? 저런 *들 벌하시지 않고!"하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끝도 없는 이스라엘의 배신과 타락 앞에 예수님의 마음 역시 저 못지 않게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죄악도 타락도 어느 정도여야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던 예수님께서는 극약처방으로 "성전파괴"를 예언하십니다. 비통한 심정, 애끓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의 대재앙을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최후의 경고마저 우리 인간을 향한 무한한 예수님의 자비, 아버지로서 애끓는 연민의 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이시기에 죽어 가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최후의 처방전으로 성전파괴와 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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