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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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현대사 - 탁치니 억하고 죽다 - 박종철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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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5-07-15 ㅣ No.94

탁치니 억하고 죽다 - 박종철 1부
 
 
 
사진은 서울대 언어학과 사무실에 차려진 박종철군 빈소. 추모제가 끝난 하루뒤인 1987년 1월 21일에도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 분향했다. <참고자료 : 조선일보 - 이 한장의 사진>
 
 
 
 
 
 

<6월 시민항쟁 특집>

탁치니 억하고 죽다 - 박종철 1부

연출 : 전우성PD

KBS '인물현대사' 에서는 6월시민항쟁 특집으로 박종철 2부작을 준비했다.
1987년 6월, 극적인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던 6월시민항쟁을 돌이켜 보고
지금 현재, 6월시민항쟁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와 지향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부 주요내용

죽음으로 역사를 움직인 청년, 박종철
1987년 6월, 우리는 거리에 있었다. 거대한 함성이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그저 한 나라의 국민일 뿐인, 국민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름 없는 ‘우리’들이 끝끝내
대한민국 역사의 물굽이를 돌려놓았다.
6월 시민항쟁은 전국적으로 연인원 5백만 명 이상이 참가한 가운데 20여 일간 계속된
반독재민주화 투쟁이었다. 그것은 지역이나 계층. 직업과 나이, 종교 등의 모든 차이를 넘어
온 국민이 써내려간 이야기였으며 낡은 체제와 거짓된 질서가 무너지고 희망에 찬 새 세상이
오고 있음을 예고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역사적 대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던 건 죽어서 알려진 청년,
죽음으로 역사를 움직인 청년 박종철이었다.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대이”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1살의 앳된 청년 박종철은 지명수배중인 운동권 선배의 소재를 말하라는 형사들의 잔인한 고문 속에 차디찬 주검이 되었다.
사건의 파장을 두려워한 경찰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었다.
아들의 죽음앞에서 부르짖은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대이‘라는 아버지의 절규는 온 국민의 가슴을 뒤흔들었고 고문치사사건의 축소은폐사실이 알려지자
그것은 독재 권력에 대한 분노로 폭발했다.

누가 87년 6월을 만들었는가
87년 1월 박종철의 죽음으로부터 6.29선언까지 긴박하게 전개되었던 6개월간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개인의 극적인 선택과 의지였다.

선배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죽음이 있었다.
그 죽음을 앞에 두고 거짓을 말할 수 없었던 내과의사가 있었다.
그 의사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야만 했던 신문기자가 있었다.
그 죽음의 진상이 축소 은폐되었음을 세상에 알렸던 교도소의 교도관이 있었다.
박종철을 둘러싸고 자기가 선 자리에서 거짓을 행하지 않고자 노력했던 여러 사람들의 ‘용기’와 ‘거짓’을 용납하지 않은 시민들의 ‘참여’가 87년 6월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평범한 한 개인의 선택과 참여가 역사를 바꾼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나’ 개인의 의지와 선택은 역사와 무관한 듯 보인다.
하지만 한 개인의 선택이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박종철의 죽음의 없었다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정의로운 선택과 참여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 해 5공을 극복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박종철의 죽음이 일깨운 참여와 각성의 도도한 흐름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을 일구어 냈다. '나' 개인에게도 역사적 책임은 존재한다.

 

탁치니 억하고 죽다 - 박종철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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