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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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말씀>_송영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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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19 ㅣ No.171639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요한 6,60-65)”

 

 

 

1) 여기서 ‘제자들’은 일반 신자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중간에 모두 떠나버린 것 같은데,

 

확실한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남아 있었던 신자들도,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점과 ‘썩어 없어질 양식’을 찾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거북하다.’ 라는 말에는 ‘표현이 거북하다.’는 뜻 외에도,

 

‘믿을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그들이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가 아니라, 원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에,

 

즉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몸의 배부름만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말씀은, 당신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체험하면,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내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한 말은 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으라는

 

강요가 아니고, ‘영적’이고 ‘진정한 생명’에 대한 내용이었다.”

 

라는 ‘해명’도 아니고, ‘말씀을 쉽게 풀이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해명하시기는커녕

 

해명하기를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2) 여기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것 같은 말씀이 나오는

 

것은 전체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도 주고,

 

너무 갑작스럽다는 느낌도 주는데, 예수님 말씀의 뜻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믿음도 없이 몸만 남아 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입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이라는 말씀은, “아버지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하지 않으면”이라는 뜻입니다.

 

뒤의 70절에, “내가 너희 열둘을 뽑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의 배반을 확실하게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배반자가 유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71절).

 

아마도 배반자 유다는 그때 이미 마음이 예수님을

 

떠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몸만’ 예수님 곁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머물러 있어야 진짜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미사 시간 동안 경건하게 성당에

 

앉아 있었다고 해도 마음과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면,

 

그것은 미사 참례를 한 것이 아닙니다.

 

‘몸만’ 성당에 앉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예수님과 함께 하려고 노력할 때,

 

그때 비로소 미사 참례를 온전히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6-69)”

 

 

 

여기서 ‘되돌아가다.’ 라는 말은, 신자가 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즉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라는 말씀은, “너희도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은 억지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받기를 원하고,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받기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주는 것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라는 말은,

 

“몸을 배부르게 할 빵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세속의

 

임금들에게는 가지 않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주님만

 

따르겠습니다.” 라는 뜻이 됩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말은,

 

사도들이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믿고 받아들인 이유를 나타낸 말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으니까 예수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항상 ‘이해’보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먼저 믿으면 언젠가는 선명하게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1코린 13,12).

 

그러나 이해부터 먼저 해야겠다고 고집부리면,

 

영영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성체성사 교리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동정잉태, 부활 등

 

모든 교리가 다 그렇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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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활 제3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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