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현장] 황사영 생가터에 아니라는 게시판이

스크랩 인쇄

최두호 [Armoo] 쪽지 캡슐

1999-07-16 ㅣ No.38

강화도에 있는 '황사영 생가 터'에 아무런 유물이나, 유적지에 관한 설명도 없으려니와, 현장에는 황씨 문중에서 '황사영 생가 터'가 아니라는 게시판을 세워 놓아 성지 순례차 현장을 찾는 신자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인천교구의 해당 책임자는 정확한 고증을 통해 진상을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가톨릭 굿 뉴스에 성지로 소개된 현장을 찾아가 실망하는 신자가 없도록 공지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성지 순례의 일환으로 7명이 강화도에 있는 황사영 생가 터를 1999. 7. 9 낮 12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찾아 갔습니다. 그날 따라 비가 내리고 있었고 현장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인천교구 명의로 '황사영 생가 터' 라는 표지가 여럿 설치되어 있었으며, 입구에는 황씨 문중에서 세운 대형 표지판에 '莊武公 黃衡 將軍 遺蹟地 墓所 莊武祠' 그 옆에 인천교구에서 황사영 생가 터임을 알리는 조그만 표지판이 서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니, 공터가 있고 정면에 큰 규모의 황씨 문중 사당 - 莊武祠 - 이 있고 왼쪽에 커다란 비석 - 莊武公黃衡將軍神道碑 - , 사당 뒷산에 황형 장군의 묘소가 있고 공터 오른쪽에 사당 관리인의 숙소가 있었습니다. 그 숙소에는 장무공의 14대손 이라는 '황우흔'씨가 살고 있었는데 확인을 위해 주소와 전화번호를 물어 보았습니다.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대묘동 황형 장군 사당, 전화 032-933-2398 그러나 우리가 찾으려는 '황사영 생가 터'에 관한 것은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 외에는 현장에 아무런 유물이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는데, 공터 오른쪽에 있는 관리인 숙소와 사당 사이에 조그만 게시판에 - 베니아 판으로 볼품없이 만들어진 - 제목은 견명조, 내용은 신명조체의 아마도 아래아 한글로 흰 종이에 프린트한 글을 확대하여 비닐로 씌워 붙여 놓았는데, 그 게시판의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그 게시판에서는 황사영을 시종일관 '성인'으로 호칭하고 있었습니다. 황사영 생가 터에 대하여 드리는 말씀 이곳을 성인 황사영 생가 터로 잘못 아시고 찾아오시는 천주교인 여러분과 표지판을 설치한 천주교 인천 교구청에 대하여 민망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어, 족보를 근거로 하고 그의 고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밝혀드리오니 성인 황사영의 생가 터를 양주군 부곡면 장흥리에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1. 이 지역은 공신 장무공 황형 장군의 유적지입니다. 2. 이 자리는 장무공 사당 중건 이전 사당의 정면 10M 앞이었으므로 주택이 있을 수 없는 위치입니다. 그러므로 성인 황사영의 생가 터가 아닙니다. 3. 성인 황사영은 장무공의 12대손 입니다. 4. 성인 황사영은 장무공의 아들 8형제 중 둘째 아들의 11대손 이며 둘째 아들께서는 한성 판윤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소지는 양주군 부곡면 장흥리(일명 가막골) 이며 묘소도 이 곳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5. 성인 황사영의 주소지도 양주군 부곡면 장흥리이며 이 분의 묘소도 이 곳에 안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11대조부터 황사영대에 이르고 그 후대까지 이 곳 한 곳에서 대를 계승하면서 거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묘소도 이 곳에 안치되어 있으며 시향도 이 곳에서 지금까지 거행하고 있습니다. *추신 이 곳을 성인 황사영의 생가 터로 오인하게 된 연유를 밝혀 드립니다. 장무공 황형 장군의 후손 중 인천에 거주하던 자가 허영심에서 분별없이 허위 날조하여 전파한 것이오니 고찰하시기를 바랍니다. 1998. 5. 1 창원 황씨 장무공파 종회 회장 황팔주

1,027 0

추천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