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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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젖은 오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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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남 [oyoo] 쪽지 캡슐

2000-10-13 ㅣ No.1908

도봉산 자운봉에 올랐을 때는

비가 온 뒤라서인 지 하늘이 아주 청명하게 맑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막 노랗고 빨간 단풍들이 손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 같습니다.

 

산 아래로

아파트들이 마치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였습니다.

산에 오르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왜 우리는 도시로가면 그렇게 아웅다웅 다투는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인 지 모르겠습니다.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지난 번 신부님 송별미사 때가 생각나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도시 속에는 복잡한 일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눈물겹도록 정겨운 얘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날은 신부님이 임기를 마치시고 가시는 송별미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모두들 여늬 때와는 또다른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습니다.

사목회를 비롯한 여러단체들과 신자들이

가시는 신부님께 영적선물을 드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성당 맨 앞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제 옆에는 초라하지만 단정하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는땀을 뻘뻘흘리시면서  몇번인가 일어나려고 했다간 그대로 앉고

앉아 있다간 또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사진을 찍기에 경황이 없었던 제가 보기에도

여간 불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성가대의 축송이 이어지면서

신부님도 눈시울이 뜨거워지셨던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여기까지 있었던 것은 오로지 주님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이 단 한마디라면 <주님을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하시며 퇴장하시기 위해 할머니가 계신쪽으로  돌아 나오시는데

그 할머니가 와락 달려나가시며 신부님의 소매를 부여잡았습니다.

 -신부님...신부님...

신부님도 그 할머니의 모습에 코가 시큰해지셨는 지 말없이 손을 잡았습니다.

 

모두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해설자가 축송이 안끝났다며 신부님을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신부님은 다시 제대앞으로 나가시고 신자들의 시선은  모두 다시 신부님께로

옮겨졌습니다. 그 때 할머님의 오열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제 곁에서 할머니는 울음을 애써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머니,고정하셔요...

제가 다독거렸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새로오신 사무장님은 모르셔요. 우리 신부님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데요...

 새성전을 지으셨는데 축성도 못하고 가시잖아요.

하시면서 계속 울음을 참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변변치 못해 선물도 못해드리고....

할머니가 울먹이는 동안 신부님은 신자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성당을 퇴장하셨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신부님을 뒤따라 나갔습니다.

성당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성당을 다시 돌아보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할머니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할머니 이제 고정하세요. 신부님도 나가셨으니 인사를 드려야지요.

하는데 할머니 손에 돈이 보였습니다.

오천원짜리 지폐였습니다. 오천원짜리는 돌돌 말린 채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정성이었고

그 오천원은 할머니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몇번이나 그 돈을 신부님께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할머니,가셔서 신부님께 전하셔요...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제가 할머니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계속 <변변치 못한 것이라서...>하며 말꼬리를 흐리셨습니다.

결국 그 할머니는 눈물로 범벅이 된 오천원을 신부님께 전하지 못하고

성당의 한쪽 벽에 붙어서서 가시는 신부님을 바라만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확신을 합니다.

비록 그 돈 오천원은 신부님께 전해지지 않았지만

신부님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성을 받으셨노라고....

그 할머니는 무엇보다 큰 선물을 신부님께 드렸노라고...

 

그것은 이 세속의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신앙속에서 말할 수 있는 통공의 눈부신 가치였노라고!

  

우리는 늘 말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남보다 더 크다고...

우리의 언어는  하나하나가  그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표시의 사랑은 이미 존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의 의미를 잃은 껍데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랑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조건적인 이해와 용서와 화해이기 때문입니다.

 

+찬미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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