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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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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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8-01 ㅣ No.5222

8월 2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마태오 14장 1-12절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연꽃>

 

오늘 복음에 소개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최후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닦는 선구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험난한 삶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로 삶은 다름 아닌 고통의 가시밭길임을 세례자 요한은 온 몸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살아 생전 세례자 요한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껏 행동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는 떳떳한 생활을 하다보니 그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당대 판을 치던 갖은 위선과 비리 앞에서 다들 쉬쉬하며 넘어갔었는데, 세례자 요한만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당장 목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할말은 하는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이런 강직하고 정의롭던 세례자 요한, 갖은 추악함으로 오염된 진흙탕 가운데 한 송이 고결한 연꽃으로 살았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사람들로부터의 시기와 질투, 박해가 끊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제발 말조심, 몸조심하라"는 사람들의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시국이 뒤숭숭하니 발언의 수위를 좀 낮추라. 이 극한 상황은 일단 넘기고 보자"는 충고에도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한치의 오차도 없던 삶, 하느님의 말씀을 목숨처럼 받들던 삶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삶이었지요. 자신이 선포한 말씀에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새벽 별처럼 고결한 삶, 연꽃처럼 깨끗한 삶을 살아갔던 세례자 요한의 인생을 묵상하면서 제 부족한 서원 생활을 반성합니다.

 

입술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엄하게, 또 폼나게, 그럴 듯한 서원을 했었지만 몸으로 서원을 살지 못하는 나날을 반성합니다.

 

돈보스코가 서원과 관련해서 후배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하신 말씀을 더욱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형제 여러분, 서원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서원한 바를 실행하기 위한 전력질주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서원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했으니 이미 드린 것을 다시 가져오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의 눈을 하느님께 봉헌했으니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책이나 도움 안 되는 호기심거리들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거두도록 합시다.

 

우리의 귀를 하느님께 봉헌했으니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불평이나 불만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로부터 우리의 귀를 막도록 합시다.

 

우리의 혀를 하느님께 봉헌했으니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형제를 다치게 하는 말, 형제의 가슴에 비수를 던지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혀는 이제 봉헌된 혀이니 매일 주님께 찬미하는 노래를 드립시다. 앞으로는 우리의 혀로 거룩한 말씀만을 선포합시다. 격려와 위로의 말만을 선포합시다.

 

우리의 손을 하느님께 봉헌했으니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우거나 굳은 일을 피하는 일없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에든 뛰어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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