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모님께 드린 간절한 기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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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숙 [rkdalstnr482] 쪽지 캡슐

2007-01-31 ㅣ No.2863

풍수원 성당을 사랑하고 미술관을 건립하는 이유

1866년 병인박해 (대원군의 천주교 탄 앞) 조선 고종3년 전부터 천주교 신자인 저의 조상들은 1870-1871년 신미양요 때 심한 박해로 경남창녕 고향을 떠나 피난 온것이 강원도 물굽이라는 곳이었다 저의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어린남매 (7세와9세)를 데리고 신자들과 함께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로 가던 중 증조부모께서 포졸들에게 잡혀 모진 고문과 굶주림으로 감옥에서 아사(굶어죽음)하셨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어린남매는 다른 신자들의 끼어 흘러들어 간 곳이 강원도 물굽 이라는 곳이었다. 어린 남매는 모진 고생을 하면서 성장하여 30세가 됐을 때는 그곳 좋은 토지는 할아버지의 소유가 됐다. 그 후 풍수원에 본당이 생기고 성당을 건축하게 되어 풍수원으로 이사를 오시어 성당을 건축하는데 온 정성을 다 바치셨다.
땅과 소를 팔아 성당에 봉헌하고 벽돌을 굽는데 육체노동을 하시고 누구보다도 심혈을 기울이셨다. 그리고 온전히 천주님만을 아신 분이시다.
돌아가실 때까지 엄격한 회장님으로 봉사하셨다. 지금도 살아계신 어르신들께서는 기억하신다.
사제가 많이 나와야 한다며 늘 기도하시고 자녀들을 신학교에 보내셨다. 1943년 저의 둘째 오빠가 사제품을 받고 현제 3대를 거쳐 4명의 사제가 탄생했다.

풍수원 성당은 신자들이 지은 것이다. 이 성당을 지으실 때 온 정성을 다 드리신 조상님들의 순수하고 경건한 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현재는 오로지 성당을 물질주의 산물로 이용하려는 것에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우리는 풍수원 성당의 역사의 일원으로 성당을 위해 그 후손답게 살고자 노력한다.

2000년 봄 풍수원 성당의 역사의 한 부분이신 저의 할아버지 묘소가 허술하여 잘 정리를 했는데 김00 신부가 동네 남정들을 여러 명 데리고 와서 삿대질을 하며 묘비를 발로 차고 또 묘소 앞에 잦 나무를 삐옥히 심어 놓고 그 경비를 내라고 협박을 하더군요. 그래서 주엇습니다. 고향의 땅은 그대로 인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이방인 같이 느껴집니다. 몇 사람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다정스러운 옛날모습이 그립습니다. 너무나 가난했던 왜정 때 신부오빠께서 폐 결핵으로 휴양하러 내려 오셨는데 영양식을 해 드릴 수 없어서 나는 메뚜기를 잡고 작은 오빠는 개구리를 잡았다. 당시 교장 신부셨던 김시몬 신부께서 하루 학생을 풀어 메뚜기를 한 자루 잡았다. 그것을 볶아 가루를 만들었으나 잡수시지도 못하고 하느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구 주교님께서 오셔서 장례미사를 봉헌 하셨지요. 제가 10세였습니다. 얼마나 슬프고 절망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을 중심으로 하느님안에 평화로이 산다. 하느님은 대를 이어 축복을 주신다. 모두 착하게 살며 성모님께서 주시는 사랑이라 믿는다.
남다른 교향의 애착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남북 이산가족의 심정을 그들 만에 것이라고 하시렵니까? 고향은 어머니 품과도 같습니다. 고향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싶어 근검 절약하며 일인오역까지 일을 한다는 말을 들어가며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해가 많고 여러 가지로 괴로움을 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986년 8월에 지금의 저의 소유지를 구입했습니다. 1인 5역을 하며 모은 것으로 10년 된 잦나무를 큰 트럭으로 사다 심고, 돌무더기 밭을 정리하여 큰 돌을 굴려 축대를 쌓았습니다.
20년동안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2002년 3월 15일 모 대학교수께 부탁한 미술관 설계도를 들고 허가를 받으려 횡성군을 방문했을 때 너무나 황당한 일을 당하였다. 어떻게 지주도 모르게 저의 땅에 금을 그어놓고 건축허가를 내 줄 수 없답니다. 김00신부가 지주들의 땅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말 안했냐고요. 김신부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무 말도 못들었다고 했다.
군 직원도 놀라고 당황하는 것을 보았다.

개인의 재산을 성당 신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인가요.

원주교구는 너무나 욕심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00 주교님이 생존해 계실 때 저의 오빠께서 200만평이 훨씬넘는 땅을 원주교구에 넘겨준 것이 있습니다. 옛날 저의 아버지와 친구 몇명의 이름오로 된땅을 어느 한 명이 팔아먹으려고 후손들의 도장을 받으려 다니는 것을 저의 오빠가 신앙인으로서 성당으로 주자고 하여 원주교구에 준 것입니다.
서로 나누어 가져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풍수원성당 맞은편 길 건너 바라보이는 모두인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땅을 두고도 피땀흘려가며 근검절약하여 조금 가지고 있는것 마져 빼앗아서 기쁘실까요. 유적지를 성지로 억지로 만든다고 하여 성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후대 역사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때가 언젠가는 옵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왕이란 자가 나붓의 포도밭을 빼앗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 됩니다.) 성서 말씀이 현재에게도 적용 된다고 봅니다. 아니라면 성서말씀을 믿을 수가 없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믿습니다. 올바른 교회의 위상을 보여 주세요. 거기에 휴양 마을이니 뭐니 한다고 그곳 사람들에게 무슨 혜택이있을까요? 횡성군과 원주교구의 수익을 올리려는 것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군 직원의 말입니다. 횡성군에서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라고요. 동네 사람들에겐 지붕위에 장닭 쳐다보기지요.

참 신앙으로 인도하려는데 신심을 기울여 주신다면 이 세상 것은 덤으로 주실 하느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처음부터 지주들과 대화를 하고 점진적으로 또 하고 또 대화를 해야 했지요. 성당을 개발하는데 어찌하여 군을 빌어서 하는지요. 광장이나 해 놓는다고 유적지가 성지가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100년이 넘은 성당은 한국 곳곳에 있습니다. 이 모두가 성지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아름답게 시골 맛이 나게 꾸며지고 옛 모습대로 보존되고 푸근함을 풍기는 마을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누구나가 바라는 바인 것 같습니다. 찾아오는 분들의 말인 즉 전에 왔을 때는 좋았는데 이젠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아니네요. 하더군요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옛집 초라한 곳에서 장사를 했을 때 너무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많이 벌어서 헌집을 헐고 새집을 훌륭하게 단장을 하고 장사가 잘 되리라 생각했었는게 그게 아니였어요.
요즘 전국적으로 조그만 이유만 있으면 성지 개발이다 라고 잔디밭 광장을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아요. 골프장 만드느라 잔디밭이 유행인가 봅니다. 모두 따라 하기를 좋아 하는 사람들----
한국의 좁은 국토 머지않아 잔디밭 세상이 되겠어요.

한국의 성화 미술관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을 횡성군 이였습니다.
한 조그마한 화가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바치고자 하는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이 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서말씀이 다시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 내침을 받으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자녀이니 아마 예수님께서 너도 이런 맛을 보라고 이런 고통을 허락 하시는가 봅니다. 기쁘게 받아야지요. 주 성모님께서는 고통뒤에는 기쁨을 주심을 믿습니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할 땐 이루어지지 않음을 깨달았어요.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는 성모자님께서 잘 알아서 모두 처리 해 주시는 대로 따를 것입니다.

약자의 것을 빼앗는 천주교가 되지 않기를 기도 합니다.
힘없는 국민들에게 법을 내세워 재산을 빼았는 공무원들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지방자치의 시행착오의 누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힘도 없고 인간의 빽도 없고 가진 것도 많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제일 큰 힘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를 지극히 사랑해주시고 지금까지 돌보아 주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보아 주실 분이십니다.
그 분은 " 하느님 아버지 이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함께하심과 동시에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성모이십니다. 아멘 "200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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