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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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말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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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순 [pak0827] 쪽지 캡슐

2003-07-27 ㅣ No.32

隨筆- 소는 말이 없다

wngok@hanmail,net

 

사람을 위하여 일하는 소는 아무 말이 없는데, 일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일 수록 불평 불만이 더 많은 것 같다.

옛날 농경 사회에서 소는 재산목록 제 1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즈음 산골에서까지 소를 큰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농가들은 별로 없고, 농가 소득이 점점 높아지면서부터 사람과 소는 같이 산다는 관념이 없어진지 오래된다. 다만 재산증식 수단으로 볏짚이나 콩잎 따위 등 부산물을 그냥 썩히기 아까워 한두 마리 정도 부업으로 기르고있는 농가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제 소와 사람과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만큼 소와 가깝게 살아온 민족도 드물 것이다. 소는 한 울타리 안에서 주인의 특별한 보살핌과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

사람보다 덩치가 큰 동물을 자유자재로 부려먹기 위하여 고안한 것이 바로 소 고삐다. 고삐는 단순히 끌고 다니거나 부려먹기 위한 도구이기 이전에, 고삐를 잡는 순간부터 소는 사람과 일체가 되게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해 왔다.

소는 주인이 고삐만 잡으면 무조건 따라 나서려고 일어선다. 지금 주인이 밭을 갈기 위해 나서는지, 팔려고 우시장으로 가려는지, 아니면 도살장으로 끌고 가려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충직한 노예처럼 모든 것을 주인에게 내맡긴 채 순명만 할 따름이다.

가라고 ’이랴’ 하면 앞으로 가고, ’어디 어, 어디 어’ 하면 왼쪽으로 가고, 고삐를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고, ’워- 워’ 하면 멈춰 선다. 빨리 가라고 큰 소리로 ’이랴 이랴’ 하며 고삐로 때리면 빨리 간다.

소는 누가 뭐라고 해도 논과 밭을 갈고 짐을 나르는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루종일 해야 할 수 있는 힘든 일도 소는 잠깐동안 해치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봄철이 되면 겨우내 얼고 진흙탕이 된 논과 밭에서 쉬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한다. 일을 많이 해서 발톱이 다 닳아 마른땅을 걸을 때 절뚝절뚝하면서도 아프다고 꾀도 부리지 않고 사람의 지시만을 따른다. 과로해서 쓰러지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고삐만 잡으면 시키는 대로하려다가 힘에 겨워 쓰러지기도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소 같다고 말한다. 꾀를 부리지 않고 일을 많이 하는 소의 근명성에서 그런 말이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소처럼 일하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놀 땐 놀고 쉴 때는 쉬자는 것이요,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미련하게 일만 하느냐는 것이다. 소의 근면성을 부정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한탕 하자는 기회주의가 만연해 있는 세상이다.

큰 소는 우마차에 2톤 이상의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다. 좁은 길이나 개천을 건널 때는 질마에 쌀 세 가마를 등에 지고 거뜬히 다닌다. 그리고 연자방아로 곡식을 찧을 때는 수백 바퀴를 돌기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연자방아 돌을 돌린다. 그것은 소가 어지럽지 않게 하기 위해 안쪽을 향한 눈은 가리고 바깥쪽 눈으로만 보게 한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다.

소가 옛날에는 생업에 많은 도움을 주는 만큼 상대적으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떠한가? 쇠고기 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소금을 먹이고, 호스로 뱃속에 물을 주입시켜서 자동차에 매달아 운동을 시킨다고 한다. 이제 사람과 소는 한가족 같은 관계가 변하여 주인과 재산 관계로 바뀌었다.

또한 소는 매년 한번씩 새끼를 낳아 준다. 그러면 어미 소와 새끼까지, 기를 수가 없는 집에서는 송아지를 길러 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어우리로 준다. 송아지를 받은 사람은 2년 동안 키우면 그 소가 새끼를 낳는다. 그러면 소를 길러 준 값으로 송아지를 차지하고 큰 소는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준다. 이것을 [어우리 소] 라고 한다.

이 어우리 소가 농가에 주는 경제적인 도움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어우리 소를 길러주고 받은 송아지를 길러서 재산 제 1호인 큰 소를 장만한다.

어우리 송아지를 주었다 큰 소를 받은 사람은 그 소를 팔아서 땅을 산다거나 고명딸을 시집보낼 때 쓴다. 아니면 대학에 다니는 아들의 학비를 대주는 등 주인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 주기도 한다.

그래도 소를 미련한 짐승이라고 한다. 부지런히 일하면서 불평을 하지 않기 때문에 미련하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소가 미련하지 않다는 전설이나 일화는 얼마든지 있다. 깊은 산길을 가다가도 무서운 짐승이나 호랑이를 만나면 소는 미리 알아보고, 버티고 서서 큰소리를 지르며 더 이상 가려고 하지 않는다. 주인에게 무서운 짐승이 있으니 대항할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는 몸짓이다. 이럴 때 주인은 사나운 짐승과 싸우는데 지장이 없도록 고삐나 코뚜레까지 풀어주어야 한다. 만약 호랑이가 덤비면 소는 주인을 사타구니 사이에 끼고 맹수와 싸우며 절대로 주인을 해치지 못하게 한다.

이른바 자기 몸은 뜯겨 죽는 한이 있어도 주인을 지키겠다는 충성심의 발로인 것이다. 이런 소의 충직성은 요즈음처럼 불신이 팽배한 시대에 본받아야 할 표본이 될 것이다. 평소에는 사장에게 충실해 보였던 부하 직원도 길에서 강도를 만나게 되면 사장을 보호하기는커녕 자기만 살기 위해 도망치기 바쁜게 요즈음 현실이다.

소는 그렇게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 바치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좀처럼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다만 새끼를 잉태하려고 수놈을 부를 때나 새끼가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을 때 애타게 울어댄다. 또 들판에서 밤이 깊도록 주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소리지른다.

그리고 자기의 죽음을 예견했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운다. 돼지는 도살장에 들어갈 때도 쩍쩍거리고 먹으며 들어가지만, 소는 동족을 도살한 흔적이 있는 장소나 그 근처에는 절대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 도살장에 강제로 끌려 들어갈 망정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다.

소는 오직 사람을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이다. 주인을 위해 발톱이 닳아빠지도록 일하고 떠날 때도 재산을 늘려 주기 때문이다. 주인을 위해 평생 몸을 바쳐 일을 해 주면서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투정도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한일에 대하여 공치사도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것은 일하고도 먹지 못하는 것이요, 그 대신 가장 가증한 것은 놀고도 잘먹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소의 충직성과 일정한 직업 없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유유 도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빗대어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다변화될수록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들이 많은데 소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늘 행동으로 보여준다.

소는 외양간에 앉아 쉴 때도 그냥 쉬지 않는다. 끊임없이 되새김질이라도 한다. 무릇 사람이란 어떠한가. 능력 이하의 일을 하는 사람일 수록 끊임없이 불평을 털어놓는다. 상대방에게 조금만 무시를 당해도 그 몇 배의 앙갚음을 하지 못해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소는 어떠한가? 죽도록 일을 해주고 마지막엔 자기의 고기와 가죽까지 주인에게 주고 간다. 그래도 소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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