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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신앙: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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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3-13 ㅣ No.859

영화와 신앙 : 단순한 진정설의 힘

너는 내 운명

 

조혜정(영화평론가,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굳이 계절에 어울리는 장르가 있다면, 멜로드라마는 아마 가을이라는 계절과 짝이 될 것이다.


바야흐로 바람이 살갗에 서늘함을 실어오면서 여름의 들뜸과 열기가 식고 차분히 가라앉은 계절에는 분위기 있는 멜로드라마가 제격인 듯 느껴질 만하다. 그래서인지 이번 가을 한국의 극장가에는 유난히 사랑을 다룬 멜로드라마가 눈에 띈다.


이미 <외출>과 <너는 내 운명>, <사랑니>가 개봉을 하였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새드 무비>, <소년, 천국에 가다> 등이 대기하고 있으며, <사랑을 놓치다>가 촬영 중이다.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이터널 선샤인> 같은 외국 영화도 관객을 기다린다.


멜로드라마는 가장 통속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통하여 보편적인 담론을 끌어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장르의 특성상 과잉의 감정 에너지가 종종 상투적이고 과도하게 영화의 흐름을 덮어버리지만, 멜로드라마는 강렬한 감성적 체험과 함께 개인을 둘러싼 사회나 현실의 무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삶에 밀착된 신파멜로의 운명론

 

이번 가을 멜로드라마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일 것이다(물론 아직 개봉되지 않은 작품들은 논외이다). <너는 내 운명>은 순정파 노총각(황정민 분)과 다방 종업원(전도연 분)의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이다. 허리 굽은 어머니가 늙은 아들 석중의 누렇게 쩐 팬티를 빨아주어야 하고, 석중은 가끔 혼자서 자신을 ‘위로’(자위)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들키기도 하며, 베트남 처녀인지 필리핀 처녀인지를 소개하는 결혼 중개업소의 사기극에 놀아날 뻔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쿠터를 타고 차 배달을 나가는 다방 종업원 은하가 마음속에 들어온다.


순진한 농촌 총각과 영악하고 닳아빠진 다방 종업원이 엮는 사랑의 줄다리기는 뻔한 에피소드들을 동반하면서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지만, 우직하고 능청스러우며 은하를 ‘운명’으로 생각하는 노총각의 지극한 순정에 관객은 슬며시 무장해제를 당한다.


영화는 석중과 은하가 비로소 행복에 겨워할 무렵 불행을 예고하며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을 세워두고 ‘눈물’을 끌어낸다. 은하가 에이즈 환자로 밝혀지면서 가족과 이웃과 사회의 편견과 냉대가 두 사람의 결합을 가로막는다.


<너는 내 운명>은 제목 자체에서부터 신파멜로적 느낌이 물씬하다. 오히려 이 영화의 영어 제목 “You are my Sunshine”은 1950-1960년대적 취향처럼 느껴져 여전히 닭살 돋지만, ‘운명’ 운운하는 한국 제목보다 애교스럽다.


그런데 이 신파적 감성의 영화가 그야말로 운명적 사랑을 믿게 한다. 아니 믿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관객을 ‘무장해제’시킨 일등 공신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특히 <로드무비>의 동성애자,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소심한 드럼 연주자, <바람난 가족>에서 인권 변호사이자 외도하는 여피 남편, <달콤한 인생>에서 잔인한 조직 보스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한 황정민은 이번에는 어수룩한 말씨와 의뭉스러운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농촌 총각을 체화하였다.


석중이 농약을 들이켜고 성대를 다쳐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은하를 부르고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이 영화가 ‘눈물’을 주요 전략 요소로 삼고 있다는 것을 능히 알면서도 관객이 눈물을 훌쩍이게 되는 것은 황정민 연기의 아우라가 갖는 힘이다. 그의 연기는 감성적인 동시에 진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탓에 그로부터 달아나기란 애초에 쉽지 않아 보인다.


삶과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영화의 묘사들도 <너는 내 운명>이 신파멜로의 구태의연함을 극복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지금의 농촌이 직면하고 있는 고단한 현실이 배경이 되거나 그러한 인물의 삶에 개입하고, 매매춘이나 인신매매, 에이즈 같은 사회문제들이 모티프로 활용된다.


가난하고 고된 농촌에 시집오는 여성들이 없어 총각들은 몽달귀신이 될 정도이고, 다방 종업원들은 생계를 위하여 티켓을 끊고 몸과 마음을 유린당한다. 너는 내 운명이고 너와 함께라면 ‘죽어도 좋아’(감독의 전작이자 데뷔작의 제목이기도 함) 식의 닭살 돋는 사랑 타령이나 운명론은 삶의 고단함과 남루함 그리고 잔인함에 대한 환기를 통하여 ‘지독한 사랑’으로 거듭난다.

 

 

주님을 ‘내 운명’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대단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에서도 멜로드라마적 취향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시편’이나 ‘아가’, ‘애가’와 같은 구약의 여러 책들은 음악과 서사가 결합된 형식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간청과 버림받음에 대한 회한, 연모의 마음 등)이 담긴 책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너는 내 운명>을 보고 하느님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적어도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내 운명’으로 따르며 고백하였다. “당신은 저를 에워싼 방패, 저의 영광, 저의 머리를 들어올려 주시는 분이십니다.”(시편 3,4) 하고 고백한 다윗은 하느님께 대한 운명적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고
이렇듯 성소에서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당신을 찬미합니다.
이렇듯 제 한평생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부르며 저의 두 손
들어올리오리다(시편 63,1-5).

 

다윗의 주님에 대한 절절한 고백과 은하에 대한 석중의 사랑처럼 우리는 주님께 “당신은 내 운명”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그의 단순한 진정성 때문이다. 그는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오로지 은하 하나만을 생각한다. 은하와 부부생활을 하면 자신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지만 그에게는 문제되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은하랑 살다 죽을래.”라며 은하 하나만을 바라보는 석중의 단순함과 그에 따른 진정성이 관객을 울리고 운명적 사랑을 믿고 싶게 하는 것이다.


진정, 주님을 향하여 “당신은 나의 운명이십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기를….

 

[사목, 2005년 11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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