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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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조차 말라버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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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9-15 ㅣ No.5495

9월 16일 화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루가 7장 11-17절

 

"주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마라> 하고 위로하시며 앞으로 다가서서 상여에 손을 재시자 메고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눈물조차 말라버릴 때>

 

슬픔 중에서 가장 깊은 슬픔은 아마도 자신이 나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일 것입니다.

 

멀쩡하고 든든하던 자식, 여러 자식 가운데서도 가장 정이 많던 자식, 나이 드셔서 그나마 가장 큰 낙이요, 유일한 의지처이던 효자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한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들을 먼저 떠나간 이후의 나날들은 어머니에게 있어 거의 제정신이 아닌 삶이었습니다. 너무나 상심이 크셨던 어머니의 일상생활은 거의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득 채워진 쓰레기 봉투를 내다버리러 나가다가도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나면 슬픔에 겨워 주저앉아 우십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쓰레기 봉투를 냉장고에 넣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아들 없는 이 세상, 어머니에게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인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던 과부의 슬픔 역시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는 말은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 "인생 종쳤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습니다. 과부가 되었다는 말은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말, 완전히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나마 과부에게는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외아들이란 존재였습니다.

 

남편을 여읜 과부에게 펼쳐졌던 인생은 참으로 팍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죽을 고생을 다 하면서도, 최저생계비라도 벌어보고자 갖은 설움을 다 겪으면서도 아들을 생각하며 미소지었습니다.

 

과부에게 있어 외아들은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과부의 유일한 희망이자 미래였습니다.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그 아들마저 남편에 이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나인이라는 동네를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비통한 장례행렬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아들을 잃은 충격과 슬픔으로 인해 실신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과부를 발견하십니다.

 

연민의 정, 측은지심으로 똘똘 뭉쳐진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과부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망울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겨우 서있던 과부를 바라보던 예수님의 마음 역시 찢어질 듯이 아파 왔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향해 더 없이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의 말, 생명의 말, 구원의 말 한마디를 던지십니다. "울지 말라."

 

오늘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나약함은 하느님의 자비를 요청하는 원동력입니다.

우리의 고통, 우리의 상처는 하느님의 사랑을 불러오는 바탕입니다.

우리의 슬픔, 우리의 눈물은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다 주는 도구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우리의 감정을 하느님 앞에 감추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의 한계와 비참함을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그분의 손길, 그분의 도움을 간청하는 노력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요소입니다.

 

때로 하느님 앞에 울고 싶을 때는 원 없이 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너무도 충격적인 일 앞에서 "하느님 당신은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다 겪게 하십니까?" 하고 외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런 일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따지면서 "도대체 이게 뭐냐고" "제발 좀 길을 열어주시라"고 간청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너무나 울어 눈물조차 말라버렸을 때, 목소리가 잠겨올 무렵, 가만히 뒤에서 우리의 어깨를 감싸주실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 눈에서 영원히 눈물을 거두어 가실 분, 결국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떠나야 할 존재란 것을 깨우쳐 주실 분, 이 세상 그 누구도 주지 못할 따듯한 위로를 주실 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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