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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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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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7-17 ㅣ No.113274

 

2017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1독서 탈출 1,8-14.22

그 무렵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9 그가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10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11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

12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13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14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22 마침내 파라오가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

복음 마태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종종 아동학대에 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됩니다.

이런 기사를 보면 참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힘없는 아이, 더군다나

아직 이 세상 안에서

할 일도 많은데 아동학대로

너무 짧게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는 뉴스는 우울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

런데 참으로 이상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배우자의 학대 행위를

알고서도 아이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방관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체벌이었다고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그런데 살해의 가능성이 있는

체벌이었고 따라서 아이가

느낄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절대로 방관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러한 방관자의 모습을

취했을까 싶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요?

사랑한다면 더욱 더 그런 모습을

 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의 행동을

눈감아주고 오히려 함께 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빙자한

더 큰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잘못을 행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또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은 가만히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평화는 폭력의 묵인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음으로

인해서 평화를 완전히

깨뜨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사랑도

또 평화도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과 평화는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는 것이고,

 죄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라고 하십니다. 부활 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도

 가장 먼저 평화를 빌어주실 정도로

 ‘평화의 주님’ 아니십니까?

그러한 분께서 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을 하실까요?
그러나 앞선 이야기를 통해

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가만히 있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세상의 평화를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거짓된 평화를

주님의 말씀이라는 칼을

통해서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악을 제거하는 칼,

온갖 불의와 다툼을 제거하는

칼입니다. 이 칼을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을

향해서도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된 평화, 잘못된 사랑을

 진짜 평화나 사랑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또 따르면서 진짜 평화와

사랑을 위해 행동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인만이 주님의

커다란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서로 맺어져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행복이다.

(퀴리부인)

아버지의 89번째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천재"

영국의 예술가이자

조각가인 헨리 무어 경의

이름 앞에는 항상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왔습니다.

그런 그가 80세 생일에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네요.
“내가 왕립 미술학교를

다닐 때에는 탁월한 조각가가

30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40년 후에 겨울 10명이 남더니,

60년이 지나고 나니

겨우 3명만 남았습니다.”
그의 말은 자신이

천재라기보다는 조각을

계속해 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실력이 나아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끈기가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천재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천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갔던 카페에서의 멋진 커피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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