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8일 (화)
(홍)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자유게시판

[神愛論], 재판 준비 착수(성 Francoise de Sales주교 원저), 우리 [사랑방]의 전자북에도 작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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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찬 [andreaphc] 쪽지 캡슐

2019-02-02 ㅣ No.217397

神 愛 論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원저, 卞基榮 신부 번역

  TRAITE DE L'AMOUR DE DIEU

  Ecrite en 1622 par Saint Francoise de Sales, Eveque et Princede Geneve, traduite en Coreen par Rev. Byun Ki Yung. 

 

[神 愛 論]이 드디어, 우선, 필자의,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에 저녁마실 오시는 손님들을 위하여, 전자북(E-Book)으로 작업을 완료하고, 조금 전(201924일 월요일, 새벽 1시 반에) 12권 모두 700여 면과 교황 바오로 6세 성하의 칙서, 필자의 머릿말, 등을 무사히 다 올렸습니다. 설을 하루 앞두고, 근면한 최인영 사장님에게 섣달 그믐날 밤 새벽부터 봉사라기보다도 혹사를 강요시킨 필자의 열성아닌 극성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神 愛 論]이 드디어, 우선, 우리[변기영 몬시뇰 사랑방]에 저녁마실 오시는 손님들을 위하여, 전자북(E-Book)으로 작업을 완료, 마침내, 조금 전 모두 올려놨다고, 새벽 1시 반에 연락이 왔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굶주리고 허기져서 아사 직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는 한국의 무수한 영혼들에게 생명의 단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신애론 재판 인쇄에 착수할 것입니다. 이 시대 한국 천주교교회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불타오르는데 쏘시개가 되도록!!!

 

1592년부터 임진왜란으로 삼천리강산이 폐허가 되고, 잔인무도한 왜적들의 칼에 우리 선량한 조선 백성들이 무참히 죽어 나갈 제, 조선백성의 머리를 잘라서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어, 머리대신 코만 베어서 자루에 담아서 소금에 절여서 일본으로 철수할 때까지 지니고 갔는데, 살아있는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풀고자, 머리는 자르지 않고, 산 사람의 코만 베어서, 부대장에게 전리품으로 바쳐서, 지금도 일본 몇몇 사찰에는 조선인 수만 명의 코 무덤이 꽤 여러 곳에 있다는 TV보도를 본 기억이 나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의 여러 고을 장마당에는 왜적한테 코가 잘려서 코가 없는 무비인(無鼻人)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에 종교혁명으로 많은 성당마당에는 선혈이 낭자하던 1615년대부터 1616년대까지는 칼빈, 쯔윙글리, 마르틴 루터, 알비젠, 등 이단 교파들과의 전란과 주변도시국가들의 전쟁으로,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에 제네부의 교구장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당시 광란하던 사회에서, 이 신애론을 완성하였습니다. 오늘의 한반도 현실은 지금 그래도 아직은 유럽의 사회상보다 훨씬 나은 편입니다. 참고합시다. 용기를 냅시다 ! 앞서가신 성인들의 뒤를 따라갑시다!!!

 

그러나 1616년 프랑스어로 초판이 나온 후 1976년 한국어로는 당시 200자 원고지 35백여매나 되는 상.하권 모두를 9p 활자로 4X6 배판 700여 면의 대작이 7년에 걸쳐 한국어로 번역한 초판이 인쇄에 들어갔는데, 당시 최민순 신부님 비롯한 Raymon Spies 신부님 여러분들의 협력으로 감격 속에 발행되었으며, 그 후, 지금까지 절판이 되었다가, 이번에, 43년 만에 재판 발행을 결정하고 마침내 준비에 착수하였으며, 반세기 전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초판을 낼 때 못지않게 지금 재판을 내는데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적지 않음을 솔직히 알려 드립니다.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신학생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의 영성과 수덕의 지침서와 교과서로 이 神愛論을 각자 한권씩 늘 서재에 비치하고 살면서, 지키고, 또 아끼고 실천하여, 자신을 가꾸도록 힘쓰고자 이 일에 뜻이 있고,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번 神愛論 재판 발행에 물심양면으로 협력하며 동참하여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평신도들의 수덕생활에 관하여 처음으로 정식으로 논술한 대신학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 각국과 한국사회가 무신론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반가톨릭적 요설과 사악한 조직력으로 교회가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400여 년 전 유럽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시대처럼 험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시대와 오늘의 한국 사회는 매우 흡사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때 한국 천주교회의 신학자들과 모든 성직자들, 신학생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의 강력한 정신적 지침서로 신애론이 반드시 필요함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의 가르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00여 년 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1567~1622)는 천주교회 역사상 최초로 정기간행물을 발행하였고, 信心生活入門, , Philothea (Introduction a la vie devote)에 뒤이어, 神愛論, , Theotimo(Le traite de l'Amour de Dieu)를 비롯하여, 珠玉같은 명문장으로 27권이 넘는 전집을 저술하였는데, 名著들은 지금까지도 신학자들과 神學人들과 靈性人들의 큰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1661, 교황 Alexander 7세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의 사후 40여년 만에 福者로 선포하였고,

시복 후 4년 후,

 

1665, 바로 성인으로 諡聖하였으며,

 

1867년에, Pio 9세 교황은 Rerum omnium 회칙 발표로,

그의 탄생 300주년을 전 세계 보편 교회적으로 장엄하게 기념하였습니다.

 

1887, 20여년 후, Pio 9세 교황은 성인을 천주교회의 신학자,

Doctor Ecclesiae로 선언하였고,

 

1923년에 와서, 교황 Pio 11세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를,

전 세계 가톨릭교회 言論人들과 저술가들의 主保聖人으로 선포하였습니다.

 

1967, 요한 23세 교황의 뒤를 이어, 2차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한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성인 주교의 탄생 400주년을, Sabaudiae Gemma 회칙 발표로, 성대히 기념하면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의 학식과 정신과 교훈이, 천주교회 현대화와 쇄신의 큰 分水嶺이 되는, 2차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에 끼친 영향은 지대함을 격찬하며 감사하였고, 400년 전 그의 思想과 교훈은, 2차바티칸 공의회 문헌, 매스 미디아에 관한 교령(Inter Mirifica) 敎義憲章(Lumen Gentium) 초안작성源泉的인 직접기여를 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서문 교황칙서 참조).

 

어느 한 聖人 개인의 탄생을 기념하여, 300주년과 400주년에 교황의 특별 회칙으로 두 번씩이나 그 탄생을 되새기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경우도 처음이지만(神愛論서문의 교황칙서 주해 참조), 더욱이 27권에 달하는 방대한 그의 전집은 영성신학과 사목신학 뿐 아니라 교의신학을 연구하는 神學人들에게, , 초자연적인 덕을 닦는 修德人들에게 일독필수의 명저가 되어있습니다<神愛論 서문 참조>.

Msgr. Byon


www.변기영몬시뇰사랑방.kr  또는 www.msgr-byon.org      www.msgrpeterbyon.org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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