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말세의 성당과 교회들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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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철 [holongfire] 쪽지 캡슐

2006-05-01 ㅣ No.2743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성서를 잘못 이해해서

말씀을 곡해하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여도

주님께 모른다 여김받게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면

대가 없이 가르치신 바울로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거스르며 신자들에게 월급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직업형 목자들로 우리 주위의 거의 모든 신부님들과 목사님들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 많은 직업형 목자들에게서 배우는 신자들에 대해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5장 20절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디모테오 둘째 편지 4장 3절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듣기 싫어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자기네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마음에 맞는 교사들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건전한 가르침.....

자동차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게하고 위협하고 공기를 오염시키므로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듣기 싫어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루가복음 18장
8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사람 죽게하고 다치게하고 위협하고

공기 오염시키는 자동차를 용납하는 신자들의 믿음이
(회개할 때마다 물로 거듭났던 것을 성령으로 거듭난 줄 착각해 온

 자동차 용납하는 신자들의 믿음이)
'마음으로 믿는 믿음' 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느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시는 뜻이 됩니다.

 


 베드로 둘째편지 3장 16절
성서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더러 있어서

무식하고 마음이 들떠 있는 사람들이
(직업형 목자들인 천주교 성당의 신부님들과 개신교 목사님들이

  자동차를 용납하는 악행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이)
 성서의 다른 부분들을 곡해하듯이 그것을 곡해함으로써

 스스로 파멸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주여,주여 하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하고
먹고 마실 때에 주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자동차를 용납해서 크고 길이 넓은 멸망의 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주님은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시게 되므로

스스로 파멸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7장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줄 착각하는 다수의 신자들
     = 어리석은 다섯처녀의 악한 감정도 생기는 기름
     = 좋은 나무라 하면서 나쁜 열매도 맺히는 기름)
14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진짜 성령으로 거듭난 소수의 신자들
       = 악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 지혜로운 다섯처녀의 기름
       = 그리스도 성령의 새 옷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지 못한

          헌 옷조각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아서 새포도주가 터지지 않는

          새 부대를 준비한 사람은 적다.)

 

 

이러해서 자동차를 용납하는 모든 직업형 목자들과 그 신자들은
구원과 직결되는 성령의 거듭남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3장
9  누구든지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자기 안에 하느님의 본성을 지녔으므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에 도대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위의 구절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하느님의 본성을 지녔으므로 죄를 짓지 않고,

도대체 죄를 지을 수가 없다는 말씀의 해석도
자동차를 용납하는 사람들은 베드로 사도의 기초 위에 불타는 업적으로

집을 세우는 것이므로 아래와 같이 곡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자기 안에 하느님의 본성을 지녔더라도
생각과 마음으로 죄짓는 일이 생기고 종종 죄짓는 일이 생기더라도

죄 짓지 않으려 계속 노력합니다.
 ( = 하느님의 본성을 지녔으므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라는 자격지심으로 죄를 지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도대체 죄를 지을 수가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도대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뜻으로 쓰인 내용일까요?
아니면 주님이 모른다 하실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억지로 풀이해서 곡해 된 것일까요?

  


 요한의 편지 3장 9절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 즉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내용을
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종종 생각과 마음으로라도 죄 짓게 된다는

한계성을 두고 이해한다는 것은
바울로 사도가 로마서7장에서 성령으로 거듭나기 이전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지 못했던 때의 일을 회상하여 설명하신 내용과 같아서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이해인 것입니다.

 


 요한의 편지 3장 9절의 바른 해석은

누구든지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하느님의 본성을 지녔으므로 생각이나 마음으로 죄를 짓는 일이 없습니다.

(=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성령의 법 조항들이 마음에 새겨져서
 생각과 마음으로 죄 짓게 되는 원인이 되는 사람의 불완전하고 타락한

 마음의 법이 사라지므로 죄된 생각이나 죄된 마음이 생겨나는 일이 없기 때문에
 ( = 마음에 있던 죄와 사망의 법 조항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되고 도대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과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으려면
생각과 마음으로 죄짓는 일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성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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