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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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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4-19 ㅣ No.129151

 


2019년 4월 19일

주님 tnsks 성금요일

제1독서 이사 52,13―53,12

13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14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15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53,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제2독서 히브 4,14-16; 5,7-9

형제 여러분, 14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5,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요한 18,1--19,42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지금 저는 2대의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데스크톱 컴퓨터로 문서 작업,

사진 작업, 영상 작업 등을 하면서

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강의를 위해

외부로 나갈 때, 그리고 여행을 가서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입니다.

 이 둘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고,

 둘 다 제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유용하고 소중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컴퓨터가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 사용했었던 컴퓨터의

교체주기를 생각하면 그렇게

 멀지 않은 시간 내에 고물 취급을 받아서

버려질 것이 분명합니다.
처음 접했던 컴퓨터는 1983년의

 8비트 컴퓨터로 ‘애플 2’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컴퓨터를 경험하면서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컴퓨터는

역사 안에서 완전히 사라진

골동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 컴퓨터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면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요즘의 프로그램들을

실행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컴퓨터를 바라보면서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가 지나고 나면 쓸모없는 것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요?

컴퓨터가 “나는 이제 만들어진지

오래되었으니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컴퓨터 본인이 아니라,

사용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로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사용자는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사용하려는데,

 “저는 이제 나이가 많습니다.

저는 능력이 없어서 안 됩니다.”라는

말로 스스로 쓸모없다고 단정

지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날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단순히 겉으로만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오신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기 자신

전부를 다 봉헌하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나약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잔을

거부하셨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고통과 수난, 죽음의 잔을 기꺼이

받아들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우리 역시 주님의 이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 편에서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모범을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묻히셨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아픔을 치유하려면 그것에

직면할 용기를 가

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파울로 코엘료)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부하가 사랑하는 리더

부하가 사랑하는

리더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부하가 두려워하는

 리더가 되어야 할까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는

부하가 두려워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등이 매일 이 책을 읽고서

실제로 부하가 두려워하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정말로

그러한 마음으로 이렇게 책은

쓴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인

피렌체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피렌체가 전쟁에서 패하는

 이유가 너무 도덕적이고

인간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군주가 비도덕적이어도

 된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를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 안에서

독재가 나왔고 아픔과 상처를

 국민들에게 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보지 않고 말마디만을

받아들였던 역사 속에 독재자들의

모습이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요?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던

 사람들도 다른 이들의 말 한마디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하가 사랑하는

리더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염하셨던 장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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