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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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의 희망 한 스푼(열정과 상처의 성인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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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9-23 ㅣ No.114920

 

"열정과 상처의 성인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

흔히 우리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통상적이고

인간적인 경향들로부터 완전히

이탈해야하며 타고났던 성격적

결함들도 철저히 배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미 성인이 되신 분들 가운데서

어떤 분들은 아주 과격하고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평생토록

자신이 안고 있던 심각한

결함들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런 결핍들은

애써 감추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오해하기도 했고

성인품에 올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위해

강한 자기 통제력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열정이 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정 역시 성덕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열정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전환된 것이어야 합니다.

 영적 열정 안에는 성덕으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영적 열정 안에는 악습과

편견을 물리치기 위한

강력한 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정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불순물들을

태워버리는

불꽃이기도 합니다.

성인들은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열정,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욕구들과 에너지들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아주 특별한 성인이

한분 계십니다.

피에트릴치나

(Pietrelcina: Pietra-

돌-이란 단어의 애칭,

'작은 돌'이란 의미)

의 비오 신부님입니다.

사람들은 이분을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말마디 그대로 쓸모없는

 돌밭 투성이뿐인 가난하고

척박한 농촌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1903년 카푸친 회에

 입회하여 1910년

사제로 서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추종하고자 노력했던 그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깜짝 놀랄 일이

 그에게 발생했습니다.

1918년에 그는 예수님처럼

오상을 받게 됩니다.

놀랍게도 상흔은 5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오상으로 인해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으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자 교회당국에서는

 그의 삶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1923년부터 그는 공적 성무

활동이 정지되어 작은 수도원

경당에서 홀로 미사를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비오 신부님께서

오상을 받으신 후 매일

흘렸던 혈액의 양은 대략

찻잔으로 하나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질문했습니다.

 “신부님, 얼마나 아프세요?”

“보십시오. 굵고 네모 난 못을

손에 대고 망치로 힘껏 때려

 박은 다음에 그 못을

뺑 돌려보십시오.

꼭 그만큼 아파요.”

 그는 오상을 자신의 몸에

간직한 그 50년 동안 골고타

언덕 위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을 똑같이

느꼈습니다.

오상으로 인한 영광과

기쁨도 컸겠지만

오상으로 인해 그분이

 매일 받았던 고통은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오상을

통해 매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생생하게 묵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성화의 길로

이끌고자 했던 그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비오 신부님은 종종 사람들에게

큰 영적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해자 각자를

다르게 다루었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팔을 펼쳐

사랑스런 아들을

맞이하듯이 인사했습니다.

고해가 끝난 후에도 이런 말로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잘 가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때로 고백성사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

그저 호기심에 한번 찾아온 사람들,

 중요한 죄를 고의적으로 빠트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거칠고 엄한

 어조로 꾸짖으셨습니다.

때로 고백소에서

내쫒기도 하셨습니다.

 간혹 부끄러움에 죄를 숨기거나

축소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보던

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입술만 나불거리면서,

어쩌면 그렇게 하느님을

얕본단 말입니까?”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

그릇된 생활을 고치려는

의지가 아주 약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놀랍게도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더러운 놈!”

 며칠 후, 그토록 모질게

쫓겨난 그 사람이 울면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제야 그는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처럼

 활짝 팔을 벌리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격려했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이제 주님은 크게

기뻐하고 계십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의 희망 한 스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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