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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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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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17-11-22 ㅣ No.91122

종이 비행기 - Carpe Diem

 

내 삶의 황금기를 꼽으라면

바로 요즈음이다.

 

육십 년이라는 적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기쁘고 환희로운 순간이

어디 한 두 번 뿐이었을까?

 

그래도 내 인생의 황금기로 요즈음을 꼽는 것은

아무래도 Sadie와 Desi, 이 두 명의 손주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들이 내게 무슨 값 나가는 선물을 주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썩 잘하거나 춤을 잘 추어서

내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아이들을 본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가슴 속으로 

맑은 샘물이 졸졸졸 명랑한 소리를 내며

흘러 들어오는 것 같은 맑은 기운이 가득찬다.

 

다음은 쌩떽쥐베리가 쓴 '어린왕자'의 한 대목이다.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 

 

내가 나이들어서 

흡사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설레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하는 감정을 회복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아이들 때문이다.

 

그저 꼭 안고 있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댄다.

그 아이들 입에서 '하부지'라는 호칭이라도 튀어 나올 땐

그 황홀함 때문에 정신줄을 놓을 때도 있다.

 

그 귀한 손님들을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우리집은 현재 비어 있다.

가끔씩 뉴저지에 볼 일이 있어 갈 때

잠을 잘 수 있는 매트리스 하나와

간단한 이부자리가 세간의 전부다.

 

물론 먹을 것도 없어서

냉장고도 텅 빈 상태로 모터만 하릴없이 돌고 있는 상태다.

 

아무 대접할 것도 없음에도

여전히 가슴은 뛴다.

 

드디어 그들이 왔다.

 

우리는 동네 성당에서 만나 

같이 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 왔다.

 

짜장면과 짬뽕을 주문해서

집에서 먹었다.

오물오물 후루룩 거리며 잘도 먹었다.

 

국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짜장면을 먹으며 내는

호로록 소리마저 황홀했다면

너무 지나치다고 타박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달게 받을 수 밖에 도리가 없을 정도다.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며

입가에 남기는 수염 모양의 자국을 'Miilk Mustache'라고 하는데

짜장면을 먹으며 입가에 생긴 '짜장 머스태쉬'는

내 손주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이들로 내 눈에 비치게 했다.

 

손주들과 입가에 까만 소스를 묻혀 가며

함께 짜장면을 먹를 때 나는 

'호로록'하는 소리는 

어쩌면 그리도 달콤한 음악처럼 들렸는지---

 

그런데 식사를 하는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거의 잠을 이루지 못 한 까닭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매트리스 위에 잠시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쿵쿵거리며 아이들 뛰어 다니는 소리며

깔깔때는 소리 때문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몸을 일으켰다.

 

아내는 손주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것이 무엇이 있나 찾아 보았지만

신통한 재료가 눈에 띄지 않았다.

 

궁즉통이라고

마침 성당에서 가져온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교리 시간에 색칠을 하는 그런 종이였는데

아내가 얻어다 아이들에게 배를 접어서

잠시 아이들 주의를 끌게 했던 용도로 사용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종이배를 해체하고 난 뒤

그걸로 비행기 조립을 했다.

 

그리고 이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종이 비행기를 날렷다.

 

손주들은 종이 비행기의 비행에

격하게 반응을 했다.

 

자기들도 비행기를 날려보겠다는 거였다.

 

Sadie 한 번,

Desi가 따라서 한 번----

 

아이들 환호 소리가 

비행기 소리를 대신했다.

 

아래 층의 할머니는

아이들 못지 않게 환호를 했다.

 

우리집은 순식간에 

비행장의 소음으로 뒤덮였고

그만큼 아이들은 즐거워 했다.

 

더 놀고 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서

자기 집으로 향하는 딸의 차에 태웠다.

 

아내가 말했다.

 

"큰 딸네가 시간이 없으면 우리라도 손주들 데리고 디즈니 월드에 가요."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디즈니 월드로의 여행보다도

바로 지금 아이들과 함께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지금이 더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resent'

 

종이 비행기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배를 해체해 만든 중고)

손주들과 함께 했던 바로 그 시간이

마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닐까?

 

진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현재라는 시간 뿐이다.

 

'현재'라는 말을 하는 순간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순간순간을 사랑으로 함께 하는 

현재라는 시간이야말로 

신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한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딸에게서 사진 한장이 날아 왔다.

 

차 안에서 골아 떨어진

웃음이 배어나는 손주들 모습.

 

그 사진 또한 소중한 선물이었음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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