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자유게시판

★예수님이 사제에게 -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의 의미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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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21-01-25 ㅣ No.221837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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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의 의미


아들아, 이렇게 써라 :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 20,1-2 참조 - 역주)

또 써라 :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신명 6,5 - 역주) 너희는 날마다 들리는 종소리를 듣는데 익숙해져 있다. 모두가 듣기는 하지만 특별히 존중해서 듣는 이가 거의 없는 종소리처럼, 계명들도 사문화(死文化)된 상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는 너희 마음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이런 말로 이 메시지를 시작한 것은, 너로 하여금 사람들이 기도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점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런 이들마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니 말이다.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은 것은 첫째 계명을 몰라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거나, 더욱 나쁘게도 첫째 계명을 알면서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은 훌륭하고 효과적인 기도를 위해 꼭 필요한 일련의 영적 활동을 수행함을 뜻한다. 우선 하느님께 이르기까지 영혼을 들어 올리는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하니,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영적으로 만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믿음의 행위 다음으로, 하느님과 만남을 심화시키는 겸손과 신뢰와 사랑의 행위가 이어져야 한다. 이 행위는 기도를 제대로 바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니,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순전히 기계적인 기도를 하지 않도록 해 주기도 한다. 나는 마음이 아니라 입술로만 나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기도하는 소수의 사람들 중에도 단지 기계적인 기도만 하면서 의무를 다했다고 우쭐해 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는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차원


내가 방금 설명한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에 얼마나 중대한 결함이 있는지를 너는 알 것이다. 지적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지만, 지금으로서는 다음 한 가지 점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

"마음을 다하여 네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생활 전반에 걸쳐 가장 높은 곳에 모시는 사람은, 건강이나 재산이나 영예 같은 물질적 성공만을 청하는 이기적이고 교만한 내용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릴 위험이 없다.

단지 그런 것들만을 청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물질적인 것에 마음이 쏠려 있고 세속적인 재물만을 목말라하는 영혼들에게는 들어가지 않으신다. 그러한 영혼들은 어둠에 싸여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을 추구하면서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차원에 위치한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가장 큰 영광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 나라가 사람들의 영혼 속에 오시기를 기도한다.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에 충실하지 않으시다면 하느님이 아닐 것이다 : "청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고....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루가 11,9 - 역주)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고 한 첫째 계명과 일치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이의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근본적인 계명, 곧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도들과 너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려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기도를 가르쳤는데(마태 6,9-13 참조), 사람들은 그것을 잊어 버렸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고, 홀로 위대하시고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선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영혼을 들어올리는 사람이다.


기도의 스승들


내 성직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스승이 되어 신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 좋은 엄마는,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싫증내는 법 없이 삶에 유익한 것을 가르치는 엄마이다. 그런데 내 성직자들은 세례 성사를 통해 영혼들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낳아 주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너희의 보살핌에 맡겨진 신자들에 대해서 진정한 영적 부성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 않으니, 대체 무엇이 너희로 하여금 이토록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하게 하느냐? 너희가 살펴볼 용기가 있다면, 너희의 영적 자녀들에게 부성애를 발휘하지 않은 데서 오는 불행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서는 너희가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너희의 이 일은 무한히 고귀한 가치를 지닌 수없이 많은 영혼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아들들아,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신앙 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고 그 원인들 중 어떤 것들은 너희의 뜻과는 상관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원인들은 너희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너희가 회개하지도 속죄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또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 줄곧 너희 자신을 섬기기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내 자녀들과 사제들아, 너희에게는 별로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너희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 자신이다.

아들아, 지치지 않고 네게 당부하는 것이니,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1976년 2월 5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오늘날에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하느님의 외아들이고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천주인 나 예수는, 공생활 삼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내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 밀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참조 - 역주).

그러나 모호한 데라곤 조금도 없는 이 말을, 제자들도 사도들도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끔찍한 '수난'과 '죽음'의 필요성을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다. 그 일에 대해서 내가 몇 번이나 분명히 표현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내 사랑의 계획 - 이는 겸손과 가난, 순종과 고통, 끊임없는 기도로 시작된 계획이었다 - 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무서운 어둠의 때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교회가 태어나도록 준비하고 있었건만 유다 백성의 유력자들에게서 오는 박해를 받아야 했고, 내가 각별히 사랑하는 이들의 이해도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람이 된 하느님으로서 내가 행한 기적들을 보고서도 믿지 않았으니, 내 수난과 죽음의 어두운 때가 오자, 맹목적인 집요함으로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리면서 재차 반항했던 것이다.


오직 한 사람만이 세상에 임박한 어둠의 때가 불가피한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으니, 다름아닌 내 어머니이셨다. 어머니의 티없으신 마음은 내 수난과 죽음을 보면서 평생토록 꿰뚫려 있었던 것이다.


아들아, 그 때나 오늘날이나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타락한 세대에 있을 뿐이다. 사탄이 지은 죄와 같은 죄인 교만으로 하느님을 거부하고, 회개하지도 내 말을 믿지도 않는 세대이니 말이다.

내 어머니께서 루르드와 파티마와 다른 여러 곳에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내가 말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이천 년 전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었으니, 다시 살아나서 활기있고 생생한 싹을 틔우려는 것이었다. 새로 태어날 '교회의 우두머리'가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며 죽은 것이다. 그 때에는 하느님의 정의를 거슬러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이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우두머리가 그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했던 것이다.

내 교회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무신론이라는 악마적 세력에 휩쓸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오늘날에는 이 ‘신비체’ 전체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 그래야 새롭고 풍성한 하느님의 생명에 다시 태어나게 되고, 바로 내 ‘정의’와 ‘자비’의 돌이킬 수 없는 요구에 화답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너희가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 내 ‘구속의 신비’는 무한한 ‘자비’와 ‘정의’의 행위인 것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구속의 신비


구속의 신비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므로, 내 자비는 너희의 구원을 요구하고 내 정의는 너희가 진 빚의 청산을 요구한다. 살아있는 내 지체들인 너희는 자유와 지성을 가지고 있고 선과 악을 원하거나 거부할 능력이 있으므로 너희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아,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말아라. 나의 자비는 내적이고 외적인 부름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니 말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 일이고, 주제넘은 교만 때문에 분별없는 고집불통이 되어 사탄과 함께 멸망하기를 원하는 자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

오, 무분별과 고집불통이여!

오, 믿음이 없는 사악한 세대여! 너희에게 임박한 어둠의 때, 죽음과 피의 때를 면하게 해 주기 위해서,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준 것보다 더한 무엇을 줄 수 있었겠느냐? 나의 ‘사랑’, 창에 찔려 벌어진 ‘심장’, 내 어머니요 너희 어머니이기도 하신 분의 사랑까지 주지 않았더냐?

내 어머니께서 거듭거듭 세상에 오신 것은, 너희의 무감각을 흔들어 깨우고, 너희에게 신앙의 위대한 실재들을 되새기게 하며, 너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시려는 것이었건만!


내 교회를 치유하리라


나는 뭇 민족과 나라들을 치유할 것이며, 내 교회도 치유할 작정이다.

이것은 사탄의 교만으로 눈이 멀어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되어 버린, 여러 신학자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몰지각한 교설로 혼란과 방향 상실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한 존재이다. 그래서 내게서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단순하다. 반면에 신학자들 중에는 복잡한 자들이 많다. 나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업신여기며 물리친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은 성전의 율법학자들처럼 그들에게서 오지 않은 것은 결코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진리 편에 있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강복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네가 가진 것과 함께 내게 주고, 네 고통도 다오. 내 자비로운 성심으로 그 고통을 감싸서, 은총의 비가 되어 네게 돌아가게 해 줄 테니까.

(1975년 12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태는 매우 중요한 죄이다


내가 너를 부르자, 아들아, 너는 내 말을 듣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과 또 다른 이들을 불렀고, 그러자 그들도 믿었다. 너와 그들이 내 부름을 듣고도 응답하지 않았다면, 너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겠느냐?

내가 한밤중에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세 차례 불렀을 때, 그 때마다 사무엘은 "예, 주님,!" 하며 응답하였다(1사무 3, 4-10참조 -역주).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예민한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나 예수가 지금 네게 말하고 있으니, 나의 부름, 나의 거듭된 초대에 응하지 않은 자들로 말미암아 누락된 모든 선을 생각해 보아라. 내 음성에 늘 귀먹었던 사람들로 인한 빈자리가 너로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이 빈자리들, 이 움푹 파인 깊은 구렁들이 내 교회를 토막내고 있는 것이다. 아들아, 이제, 내 초대에 귀먹은 탓으로 이렇게 끔찍한 빈자리를 만듦으로써 나태라는 잘못을 범한 자들의 중대한 책임을 생각해 보아라. 나태죄는 독립적인 하나의 죄로 홀로 떨어져 있는 법이 없다. 그 각각의 죄가 큰 불편과 거북함을 안겨 주면서 '신비체'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이다. 상상해 보아라, 사도들도 성인들도 없는 내 교회를! 이 나태죄가 내 교회에 가득 차서 이제는 흘러 넘칠 지경이다.


예수님, 그토록 고집스러운 귀머거리 상태가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사랑'이신 분의 부르심 앞에서 왜 그토록 차가운 침묵을 지킵니까? 당신의 요청을 그토록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아들아, 네 주변을 둘러보면 이해가 될 게다. 내 복음서에서 너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대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너는, "제발이지 한 분씩 차례대로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들아, 이제는 주의해야 한다! 내가 밤낮으로 여러 번 너를 부르지 않았더냐? 그런데 "사람의 원수"도 내 음성에 이어 그의 소리를 들려주려고 항상 기회를 노리곤 했다. 내게 "예"라고 대답하면서 내게 대답한 것이 아니라 원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 때, 너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 마찬가지로 뒤따라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인간을 악과 죄 쪽으로 기울게 하는 원죄의 통탄할 유산을 알고 있지만, 또한 사람이 된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인 내가 너희로 하여금 그러한 경향을 극복할 수 있게 하려고 무엇을 주었는지도 매우 잘 알고 있다. 바로 내 구속 사업의 풍성한 열매를 주었던 것이다.

아들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가 그토록 큰 사랑과 인내심으로 '빛'과 '사랑'을 향해 열리도록 권유하고 당부해 온 사람들이, 곧 영혼의 목자들과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런 나에 대해서 또 내 교회에 대해서 이윽고 배반에 배반을 거듭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지옥의 어두운 세력과 결탁하여 나를 모욕하고, 새로운 유다가 되어 나를 원수들에게 팔아 넘기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때의 결정


아들아, 내 교회 내부에서 수치스러운 음모가 꾸며지고 음흉한 모의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너는 별로 아는 바가 없지만, 내가 앞서 말했듯이, 그리고 한 번 더 말하지만, 교회의 외관 배후에서 자행되는 은밀한 악 전체를 네가 보게 된다면, 단 한 순간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구원자인 나와 죄 속에 잠겨 있는 영혼들 사이에는 깊디깊은 구렁이 가로놓여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수많은 내 주교들과 사제들과 신자들의 영혼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받아들였고 그들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히도 죄로 인해 마음이 굳어지고 교만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고 말았다. 그런데 이 불행한 자들의 수가 참으로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강히 버티는 내 원수와 그의 모든 군대를 꺽을 수 없다거나,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로 인한 극심한 출혈을 막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스스로의 임무를 모독한 그들의 행위 자체가 그 때를 결정할 것이고, 이는 일찍이 그 예가 없었을 만큼 무서운 때,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의 때가 될 것이다. 내가 네게 말한 것을 누구든지 깨닫게 될 날이 오리라. 그러나 지금은 믿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들아, 내가 네게 상세하게 말하지 않은 것은, 목자와 사제와 신자들이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은총의 충동에 무감각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요인에 대해서인데, 이것은 더 뒤에 가서 말해 주겠다.

너는, 추락하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깊은 구렁의 가장자리로 가고 있는 네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너의 내적 고통과 외적 고통을 모두 내게 봉헌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사랑하여라.

네게 강복한다. 너와 함께, 선의의 모든 봉헌자들에게도 강복한다.

(1977년 11월 10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 외의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아들아, 네게 말했듯이, 너희가 기도할 때면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행위로 내게 이르기까지 올라와서 내 앞에 있을 필요가 있다. 마땅히 내 앞에 있되, 늘 물질적인 것을 청하려고 부심하는 이기심과 자기 자신을 내 앞에 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앞에서 마음을 모아 흠숭하면서 내 아버지의 '이름'이 빛나시기를 기도하고, 나의 '나라'가 오고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해야 한다.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나머지 모든 것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주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탈출기 2,3-4 참조 ; 신명기 5,6-7 참조- 역주) 이 첫째 계명은, 자유와 지성을 가진 조물인 인간이 지상 순례를 하는 동안 그 자신의 물질적 요구와 영적 요구 사이의 균형을 잡고자 한다면, 나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차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에게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이 초월적 실재가 없다면 행복도 없고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그럴 때 인간은 어찌나 큰 고통을 겪게 되는지,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지기 십상을 정도이다.


하느님께 돌아와야 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작품이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첫째 계명을 주시어 우주 질서의 조화 속에서 올바른 위치를 점하게 하셨다.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인간은 논리적이고 자연적인 범주를 두루 한 바퀴 돌고나면 하느님께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믿음과 이성의 논리가 이를 원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느냐고? 간단하다. 아들아, 하느님을 인간 존재의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으면 된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나중에 저 세상에서, 곧 천국에서 하느님을 누리기 위함이다." 이는 틀림없이 참된 교리이건만, 자연주의적인 인생관의 당연한 결과로서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과 심지어 일부 사제들에게서도 이 교리가 소멸되고 말았다.

그 실제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네가 사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너도 알고 있는 한 수도자가 있다. 자신을 봉헌한 영혼이니 의당 완덕을 지향하고 삶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이 교리도 알고 있어야 하건만, 네가 알다시피, 그는 고해성사를 주는 동안 간통을 포함해서 순결을 거스르는 온갖 죄에 대해서 참회를 요구하지도 않고 용서의 기도를 외우곤 한다.

그는 자신의 생활과 고해소에 몰려오는 허다한 신자들의 생활에서, 제6계와 제9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계명들을 지워 버린 것이다. 그런데, 단지 이 불행한 수도자만 홀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교들이 그들 교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해서이냐? 알고 있다면 어찌하여 그런 사제들에게서 과감히 고해성사 집전권을 박탈하지 않느냐? 주교들이 그 여실한 타락의 중심점을 용납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그들의 이익


그리스도인들과 사제들은 오늘날 마치 다스려야 할 세상이 있기나 한듯이 분주해서, 삶의 진정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사실 그들은 자신을 , 곧 그들의 "나"를 찾느라고 바쁘기 짝이 없다. 앞장서서 주도권을 발휘하는데에 온통 마음이 사로잡혀 있으므로, 외관상으로는 열성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주도권이지 나의 주도권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나를 앞장세우는 것이 훨씬 더 단순하고 안전하고 빛나는 길이다. 이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하느님을 찾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에 앞서 하느님을 만유위에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찾는다는 것은

1) - 하느님의 '영광'

2) - 하느님의 '나라'

3) - 하느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일하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섬기지 않는 법이다.

아들아, 충실히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얼마나 되겠느냐?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한다면,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곧 마귀를 섬기는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열매들이 배반과 배교와 부인 때문에 썩어 떨어지고 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너희들도 너희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되리라....

아들아, 네게 말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정말이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도 알다시피, 아무도 죽음을 모면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인간의 결정적인 종말도 아니다. 영혼과 육신이 잠시 갈라지는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 하지만 예수님, 무신론자들은......,

말로는 무신론자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훨씬 적다.

어떻든, 죽음 앞에서 의심하지도 당황하지도 않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건 그렇고, 나는 네게 이교도들도 알고 있었던 이 지혜가 없는 사제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로마의 웅변가요 저술가였던) 치체로는 "죽음아, 네 판결은 얼마나 훌륭한가!" (Mors, quam bonum est judicium tumm.) 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교도들까지도 지혜로운 것으로 여겼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 믿음이 없는 세대의 사람들은 마치 불길하고 음산한 물건을 치우듯 영혼에서 치워버린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 아무도 죽음을 도착점이나 출발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들의 수가 정녕 표현할 수 없도록 많은 것이다.

기도하고, 보상하여라! 걱정하지 말아라. 네 고통을 봉헌하여라. 네 고통은 나를 흐뭇하게 하니, 향기 그윽한 향처럼 내 옥좌에까지 피어오르고, 이윽고 은총의 비가 되어 다시 아래로 흘러내린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너와 함께, '생명의 말씀'인 내 말을 알리려고 네 곁에서 협력하면서 너를 사랑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강복한다.

(1976년 2월 19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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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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