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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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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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4-23 ㅣ No.3599

4월 24일 부활 제 4주간 수요일-요한복음 12장 44-50절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

 

 

<큰집>

 

오늘 저는 내일이면 우리를 떠날 두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딜 가고 싶냐?"는 제 물음에 한 아이가 기특하게도 "취직 나가기 전에 몇 년 전부터 큰집(?)에 머물고 계시는 아버지 면회를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강변 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리던 저는 우연히 두 아이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아버지 잘 하면 올 연말에 나올 수 있다고 하던데...이번에 나오면 더 이상 별일이 없어야 될텐데...", "야! 그래도 너는 좋겠다. 비록 큰집에 계시지만 그나마 찾아뵐 아버지라도 있잖아?"

 

면회실 안에서 거의 1년만에 만난 두 부자의 모습은 더욱 제 마음을 안쓰럽게 만들었습니다. 손이라도 마주 잡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꺼운 투명칸막이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두 부자 그간 하고 싶었던 말이 많을텐데, 막상 얼굴을 대면하고 나니 할말들을 잃은 듯 했습니다. 계속 했던 말들만을 되풀이했습니다.

 

"건강하기만 해, 아빠!", "그래 너도 건강하구"(어색한 침묵), "편지 자주 할게", "그래 취직하면 전화번호랑 주소랑 정확하게 적어서 편지해라"(서로 눈길을 피함), "내 이번에 나가면 정말 열심히 할거다", "그래 내가 빨리 벌어서 아빠랑 살 방 하나 마련해 놓을께"...등등.

 

그러고 있는 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저나 경비교도관이나 둘 다 그 안타깝고 슬픈 상황을 지켜보느라고 혼났습니다. 고통스런 현실 앞에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두 부자의 모습에 연민의 마음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지닌 연약함과 부족함, 죄와 오랜 악습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로 인해 "혹시라도 내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을 많이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이유는 우리의 고통, 한계, 불쌍함, 가련함, 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닌 결핍이나 나약함은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결국 우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하느님 자비에서 멀어집니다. 반대로 우리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우리는 더 큰 하느님 자비의 손길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단죄의 하느님이 아니라 구원의 하느님, 심판관으로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위로자로서의 하느님, 우리의 가련함에 눈물 흘리시고 밤잠 설치시는 연민의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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