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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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림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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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3-19 ㅣ No.110829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림

 

- 윤경재 요셉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요한4,13~15)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과 이민족의 혼혈인으로서 자기 나름의 사마리아 오경을 가지고 하느님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과 솔로몬이 세웠고 또 헤로데가 세운 것이라며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쳤던 그리짐 산이야말로 참된 성전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BC120년경에 서로 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 후부터 둘 사이는 철천지원수가 되었고 예수님 시대 때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라는 명칭은 지독한 욕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방인 노예보다 더 못한 최하 계급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루카복음서 953~54절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숙소를 제공하지 않고 거절하자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불살라 버리자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 시대 여성의 지위는 아주 열악했습니다. 함부로 문밖출입 하는 것도 금지되었으며 혼자서 밭일을 나가거나 우물가에 나가는 것도 제한되었습니다. 모르는 남자와 대화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평생 남성의 소유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속했습니다. 여자의 말은 믿을 만한 증언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 중에도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나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라고 알려주었을 때 이 여인의 첫 번째 반응이 지금 우리 생각과는 아주 다릅니다. 놀랍게도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입니다. 즉 그녀는 그동안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고백입니다. 이 말은 우물가에 여인들이 모여서 빨래를 하며 왁자지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는 우리네 정서와는 사뭇 다릅니다. 우물까지 거리가 멀어서 나오기 힘이 들었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남들이 경원시하는 눈초리가 싫었다는 말입니다.

 

한동안 저는 이 여인의 말을 스쳐지나가듯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로 다음 구절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는 장면이 약간 단절되고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고, 예수께서 뜬금없이 남편 이야기를 꺼내시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것조차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 이해되자 모든 의문점이 풀렸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말씀과 행동은 하늘의 반을 지탱하는 여성의 지위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이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인류 역사상 첫 번째 페미니스트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가 아니며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걸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남편마저 없어 삼중으로 천하게 대접받던 사마리아 여인을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천하게 대접받던 여인도 예수님의 이끄심에 따라 주님을 알아보는 눈이 열리고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샘이 솟는 자신의 몸이 성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도 그리짐 산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3,5)

 

 

 

요한복음서에서 물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정결해지고 새로 태어남을 뜻합니다. 이제 삼중으로 천하게 취급받았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생명수를 마시고 새로 태어났습니다. 더는 남성의 소유물이 아니며,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욕지거리에서 자유로워졌고, 여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자기임(authenticity)’을 찾은 것입니다. 자신 안에 물이 솟는 샘을 파고 참된 여성성을 통해 주님께 나아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탈무드에는 우리가 죽어서 하느님 어전에 나가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너는 살아서 진정한 너로 살았느냐?”

 

진정한 자기임(authenticity)’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정립될 때,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발견될 것입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남들과 비교당하지 않으며 독립적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바탕으로 진정한 인간성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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