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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좋은 열매 (마태7,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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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6-23 ㅣ No.147811

 

2021년 6월 23일 수요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좋은 열매 (마태7,15-20)

나해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1독서<주님께서는 그와 계약을 맺으셨다.>(창세15,1-12.17-18)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두려워하지 마라나는 너의 방패다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아브람이 주 하느님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화답송 시편 105(104),1-2.3-4.6-7.8-9(◎ 8ㄴ 참조)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그 이름 높이 불러라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그분께 노래하여라찬미 노래 불러라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복음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알아볼 수 있다.>(마태7,15-20)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창세15,1-12.17-18)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갈라, 갈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창세15,10.17)

 

'반으로'로 번역된 '빳타웨크'(bathawek)는 '~안에'(in)을 의미하는 전치사 '뻬'(be)와 정관사 '하'(ha)  및  '정 가운데'를 의미하는 '타웨크'(thawek)가 합쳐진 말로서 '바로 그 정가운데'(in the midst)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 바로 그 정 가운데를 쪼개라는 것은 좌우로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하느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빠타르'(bathar; 자르다, 쪼개다)라는 표현은 창세기 15장 18절에 나오는 '뻬리트'(berith; 계약)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뻬리트'(계약)도 '자르다', '쪼개다' 란 의미를 갖는 '빠라'(bara)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계약'이란 용어의 어원이 암시하듯이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계약을 맺을 때 그 표적이 되는 쪼갠 희생 제물 가운데로 계약의 두 당사자가 지나가는 관습이 있었다. 이것은 만약 계약이 성실하게 지켜지지 않을 때, 그 위반자는 희생물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미를 지닌다(예레34,18-21).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처럼 희생 제물을 쪼개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지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하느님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깨뜨린 이후로, 모든 인류는 계속 원죄가운데 태어나 본죄를 지음으로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깨뜨리며 살아감으로, 모든 인간은 마땅히 죽어야 될 운명이지만,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스스로 죽으심으로 하느님의 공의를 채워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의 제물이 예표하고 암시하는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구속 공로로 말미암아 영적 죽음을 모면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17)

 

여기서 '화덕'(풀무)으로 번역된 '탄누르'(thannur)는 진흙으로 만든 꼭대기에 통풍을 위한 구멍을 낸 화로를 가리킨다.  그런데 창세기 15장 17절의 연기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하나는, 화덕의 횃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당한 혹독한 고난을 상징하고(신명4,20; 이사48,10), 뿜는 연기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구원의 때를 알지 못해 방황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나타낸다는 견해다.

 

또 다른 하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여행할 때 밤낮으로 지켜준 불기둥과 구름 기둥처럼(탈출13,22; 14,24; 33,10) 화덕과 연기도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의 상징으로(탈출3,2; 19,18; 이사31,9) 볼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 두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만, 뒤이어 나오는 횃불이 쪼갠 짐승들의 고기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는 것을 볼 때, 횃불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화덕과 연기도 하느님 현존과 임재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하느님께서 짙은 어두움 가운데 고뇌하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횃불과 연기 가운데 임재하신 것처럼, 성도들이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홀연히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시며 마음에 확신과 더불어 죄악을 극복할 힘을 주신다(이사41,10).

 

'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이처럼 '바로 그'란 의미의 정관사 '하'(ha)와 '이것들'이란 의미의 지시 형용사 '엘레'(elle)가 사용된 것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제물(창세15,9)을 상징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 제물들은 모두 정결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하느님께서는 죄악으로 오염된 이방 사람들이 아니라 이들과 구분된 정결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제물 위에 임하시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마음이 깨끗한 이들에게 찾아오신다(마태5,8).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예수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그들의 말로 백성을 현혹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경계하시며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에 관한 비유를 통해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고와 자기 자신을 반성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이 대목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이들과 그리스도인 모두에 대한 경고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7,16-17) 거짓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대한 옳고 그름은 그 결과 곧, 그들의 행실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한국사회에도 신자들을 현혹하는 이단과 무신론, 반그리스도적 사상들, 뉴에이지, 그릇된 신비주의, 혼합주의 등이 넘치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가정을 파괴하거나 명예와 재물을 노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말이란 아름답고 호감을 주며, 재치 있고, 경건하며 슬기롭고 매혹적일 수 있으나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진실인가는 행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이란 언제라도 바뀔 수 있고, 얼마든지 참된 견해와 실제 의도를 은폐하는 수단으로도 쓰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바로 이런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하고, 이간질로 분열을 조장하여 양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이런 이들을 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7,19-20) 이 말씀은 특히 거짓 예언자들에게 해당되지만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신앙과 사랑으로 실천하는 행동만이 예수님의 참 제자임을 말해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좋은 열매’란 산상설교에서 요구하신 가르침, 곧 하느님 뜻에 일치하는 올바른 행실을 말합니다. 좋은 열매란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영의 열매 곧,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을 가리킵니다(갈라 5,22). 

반대로 나쁜 열매는 육의 열매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당파심, 이기심, 싸움, 시기, 분열 등을 말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기만을 찾는 잘못에 빠졌고 사랑의 일치를 이루기보다는 순진한 양들의 믿음을 악용하고, 파벌과 분열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드러내기 위해서보다는 자기 이익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가르쳤습니다. 말뿐이었고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으며, 어떤 열매를 맺고자 하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혹 우리 사이에서 험담이나 중상모략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경우는 없는지 살펴야겠지요. 또 사나운 이리처럼 자기 인기에 신경을 쓰고, 자기 공적처럼 자랑하고, 자존심을 앞세우며 누구에게든 인정받으려는 삶의 태도는 없는지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여 남을 헐뜯고, 상대방의 영혼의 괴로움은 헤아려보려고 하지 않고 제 3자의 말만으로 판단하며, 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처신을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말로 남을 현혹하고 말로만 사랑함으로써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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