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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깨끗한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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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12-09 ㅣ No.4329

12월 9일 월요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루가 1장 26-38절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깨끗한 임종>

 

어제 아침 제가 머물던 수녀원 바로 옆집 양로원에서 돌아가신 할머님은 참으로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물론 할머님이 노년에 접어들면서 마땅히 의지할 곳이 없어 숱한 고초를 겪으셨지만,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는 수녀님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님은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얼마나 "감동적이고 화끈하게" 마무리지었는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견디느라,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된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다른 것에 신경 전혀 쓰지 못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할머님은 다른 임종자들과 달라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님은 돌아가시기 직전 돌봐주시던 수녀님들에게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첫 번째 유언은 자신이 미리 사 둔 묘 자리를 다른 할머니에게 양보할테니 당신은 화장을 시켜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유언은 그간 아껴 모아둔 꼬깃꼬깃한 용돈을 내놓으시면서 당신이 돌아가시거든 당신 대신 한번 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어를 돈 되는 대로 사서 수녀님들과 할머님들, 고마운 분들에게 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어제가 양로원 김장하는 날이었는데, 할머님 유언대로 홍어를 잔뜩 사서 김장하러 오신 봉사자들, 수녀님들, 할머님들에게 돌렸습니다. 모두들 유언을 남기신 할머님을 생각하며 맛있게 홍어를 먹었습니다.

 

여행길을 떠나기 직전 깨끗이 정리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웃을 생각하셨던 할머님의 따듯한 마음이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숭고하게 여겨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성모님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창조 때 주어진 그 최초의 순결함과 순수함을 끝까지 잘 간직하셨다가 다시 하느님 앞에 봉헌한 성모님의 생애 앞에 너무도 닳아빠진 제 영혼이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하루입니다.

 

본성 상 나약한 우리는 수시로 죄에 떨어지고 동일한 악습을 반복하면서 영혼의 순수성을 상실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양로원에서 돌아가신 할머님의 임종을 바라보며 다시금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느님 앞에 너무도 부당하고 때묻은 우리이지만 그 할머님처럼 매일 떠나는 노력, 매일 준비하는 삶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삶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그 빈자리에 하느님이란 새로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떠날 때 그래서 그 떠난 자리에 하느님 그분께서 머무르실 때입니다.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비우고, 모든 집착에서 떠나며,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을 사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묘미는 쌓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허물어트리고 바닥으로 끊임없이 내려가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정화와 쇄신의 여정을 출발하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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