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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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간 때문에 종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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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1-15 ㅣ No.4437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히브리서 3장 7-14절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유혹을 받고 반역하던 때처럼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마라. 너희 조상들은 사십 년 동안이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도 하느님을 시험삼아 떠보았다.

 

 

<저 인간 때문에 종쳤네>

 

유다 광야를 여행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말마디 그대로 아득하게 너른 벌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하고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끝도 없이 아무 쓰임새 없는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불모지, 별 의미 없는 죽은 땅이 광야였습니다. 일년 내내 강우량이 거의 없는 광야에는 풀도 자라지 않기에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광야의 한 가운데 서니 그저 끝도 없는 하늘과 황폐하기 그지없는 땅 뿐이었습니다. 잠시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던지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습니다.

 

광야의 한 가운데 서니 출애굽 시대 시나이 광야를 횡단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광야를 횡단하던 백성들은 틈만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렇게 입방아를 찧어댔습니다.

 

"모세, 저 인간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 뭐땜시 잘 나가던 우리를 이 쓰잘대기 없는 광야로 몰고 나왔나 말이야? 이보게 기억나는가? 이집트에서의 생활 말일세. 그때 우리가 얼마나 좋았던가? 매일 넘쳐나던 포도주와 철판구이, 포근한 잠자리 말일세. 모세, 저 인간 때문에 우리 인생 종쳐버렸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출애굽 사건에서 광야체험은 필수과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기간 이집트에서 생활하면서 덕지덕지 묻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서 광야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갖은 형태의 우상숭배 습관을 털어 내기 위해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할 검문소였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저질렀던 숱한 불충실과 배반의 역사를 정화시키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웠던 광야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체험을 통해 너무도 나약하고 인내심 없고 부족한 자신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대면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들이 최종적으로 의지할 곳은 야훼 하느님 한 분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광야에서의 고통과 외로움, 극도로 제한되고 결핍된 생활은 영적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 안에서도 광야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세례나 견진 성사의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광야체험을 시작합니다. 세례직후의 그 감미로운 은총체험, 기도체험은 잠시 뿐입니다. 즉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실수를 해도 큰 실수를 했는가봐. 왜 그렇게 성급하게 세례 받겠다고 결정했을까?" "이게 도대체 뭐야? 주일마다 놀러도 못 가고!", "또 지은 죄도 없는데 그 어색한 고백성사는 왜 그리 자주 보라는지?" "그리고 가만히 보자 하니 믿는 사람들이 더 해요. 뒤로 호박씨란 호박씨는 다 까고."

 

하느님 체험은 고사하고 교회 공동체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그러다가 가정에 우환이라도 닥치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몸이라도 아프게 되면 신앙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싶어집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바로 광야체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야 비로소 옥석이 가려집니다. 다시 말해서 참신앙인과 사이비 신앙인이 가려집니다. 사이비 신앙인은 광야를 만나면 즉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나약한 본성을 남김없이 드러냅니다. 사막에서만큼은 자신의 실상을 절대로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신앙인은 광야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날씨가 좋던지 나쁘던지, 동행하는 사람들이 투덜대던지 말던지, 음식이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최종목적지가 어딘 지를 명확히 알고 있기에 거기서 누릴 행복을 생각하며 눈앞의 괴로움을 기꺼이 견뎌냅니다.

 

당장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에 무지 답답하고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언약을 굳게 신뢰하며 오늘 자신이 걸을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사람, 그가 참 신앙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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