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7일 설 명절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문제를 협의할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을 이번 주 내 갖자고 북한에 제의할 방침이다. 정부 핵심 당국자는 26일 “상봉 실무 절차 논의뿐 아니라 북측의 진의 파악 등을 위해서는 양측의 대면이 필요하다”며 “조속한 상봉을 위해 설 명절 연휴(1월 31일~2월 2일) 이전인 이달 28~29일께 적십자 실무접촉이 시작돼야 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고 밝혔다. 접촉에는 이덕행(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을 수석대표로 한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 북측과의 협의를 거쳐 상봉장인 금강산 지역에 통일부 당국자를 비롯한 시설점검단을 조속히 파견해 현지 이산가족면회소와 숙소의 난방과 전력·급수 등 설비를 보수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산상봉 시기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백지수표’를 보내 왔지만 우리가 일방적으로 액수를 채워 넣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백지수표’란 북한 적십자회가 “설이 지나 날씨가 좀 풀린 다음 남측이 편리한 대로 정하는 게 좋을 것”(24일·대남통지문)이라고 한 대목을 의미한다. 당국자는 “북측이 설 명절을 지난 시기 어느 때라도 정해도 좋다는 식으로 말하면서도 ‘날씨가 좀 풀린 다음’이란 단서를 단 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혹한과 폭설이 잦은 금강산 상황을 고려할 때 ‘풀린 날씨’는 3월 이후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설 이산상봉 제안(6일 신년 기자회견)을 9일 거부하면서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조기 상봉을 추진하는 건 다음 달 24일 시작될 ‘키 리졸브(Key Resolve)’와 독수리(Foal Eagle)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시기를 늦췄다가는 북한이 합동군사연습을 빌미로 상봉 합의를 또다시 깨버릴 수 있다는 우려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는 지난 9일 통지문에서 “곧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벌어지겠는데,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통일부는 다음 달 17일께부터 엿새간 남북한이 선발한 각 100명이 각기 사흘씩 순차적으로 두고 온 가족을 상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당국자는 “27일 대북전통문을 보낼 때 우리가 희망하는 상봉 날짜를 명시할지 아니면 적십자 실무접촉 때 북한에 직접 날짜를 제기할지를 놓고 막판 검토 중”이라고 귀띔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한·미 군사연습을 ‘평양 타격훈련’이나 ‘핵 공격’으로 선전·선동하고 나서자 다음 달 초 훈련 일정과 목적 등을 북한과 중국 군부에 통보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이번 훈련의 경우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이 정비 때문에 불참하고 전략폭격기도 오지 않는 등 예년보다 수위가 낮아졌는데도 북한이 집요한 비난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김정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언급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5일 마르코 루비오 미 상원의원을 접견한 자리에서는 “북한이 최근 갑자기 유화적인 선전공세를 펴고 있는데, 과거 경험으로 보면 항상 그런 공세를 편 뒤 도발이 있거나 말과 행동이 반대로 가는 경우가 있어 왔다”고 강조했다. 또 “이제는 말보다 행동”이라며 북한의 진정성 있는 실천을 촉구했다. 정부 당국자는 “박 대통령이 신년회견 때 이산상봉을 ‘남북 관계의 첫 단추’로 제시한 만큼 향후 북한의 순조로운 상봉 호응 여부가 정부의 대북 접근 속도와 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