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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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시작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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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7-07-17 ㅣ No.113272



2017.7.17.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탈출1,8-14.22 마태10,34-11,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끝은 시작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



이스라엘의 역사가 참 파란만장합니다. 

무대는 바뀌어 사람은 떠나도 하느님은 쉼없이 일하십니다. 

요셉이 살아있는 동안 이집트에 온 야곱의 자손들은 번영과 행복을 누립니다만 

야곱과 요셉이 세상을 떠나고 새 임금이 군림하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됩니다.


끝은 좋든 나쁘든 새로운 시작입니다. 

창세기 독서의 끝은 탈출기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집트에서의 그 좋던 태평시절은 끝나고 이제 이스라엘인들의 종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와중에도 당신의 사람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남은 사람들을 통한 하느님의 활동은 은밀히 계속됩니다. 

도대체 하느님께서는 언제 쉬시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쉼없이 일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종살이 하던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는 일과 쉼이 동시적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을 참으로 혹독하게 대하면서 압박하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는 생략된 부분입니다. 

이집트 임금은 이스라엘인들이 사내아이를 낳는대로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산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임금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사내 아이들을 살려 냅니다. 

이런 상황을 탈출기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에 하느님께서 산파들을 잘 돌보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번성하여 더욱 강해졌다. 

산파들이 하느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집안을 일으켜 주셨다.’(탈출1,20-21).


마침내 분기탱천한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에게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지고 딸은 모두 살려두라 명령하지만 

이런 와중에서 하느님은 모세를 예비하십니다. 

내일부터 역사무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모세입니다. 


인간의 그 무슨 시도도 하느님을 경외하며 하느님의 길을 가는 이들을 좌절시킬 수 없음을 봅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살아계시어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결정적 순간에 당신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이어 그 시대에 필요한 성인들을 보내 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통해 일하십니다. 

수도공동체는 물론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세 단절어도 그리스도 중심의 삶안에 포함됩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분열은 필수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며 가족내의 분열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은 거짓평화가 아닌 참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은 저절로 드러나니 분열은 필연적입니다. 

파괴적 분열이 아니라 참 평화로 가는 창조적 분열입니다. 

이런 창조적 분열을 통해 마침내 그리스도 중심의 일치의 참 평화가 실현됩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주님께 합당한 삶입니다. 

주님은 가족뿐 아니라 누구도 주님 자신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당신께 합당하지 않다 하십니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형제들에게 집착없는 깨끗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이 성소입니다. 

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저절로 자기 책임의, 자기 운명의 제 십자가를 지고 항구히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도 주님 사랑에서 나옵니다.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십자가의 길같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목숨을 얻는 생명의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사는 이들은 만나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알아 환대합니다. 

믿는 이들을 환대함은 바로 그리스도를 환대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환대함은 바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마태11,42).


넓고 깊이 보면 모두가 주님의 작은 이들입니다. 

하여 성 베네딕도는 그의 규칙서 53장 첫마디에서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명령하십니다. 

하여 정주영성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환대영성입니다.


주님 환대의 집인 분도수도원이요 주님 환대의 사람들인 분도수도자들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의 자연스런 표현이 환대의 영성입니다. 

비단 분도수도자들뿐 아니라 믿는 이들의 보편적 영성이 환대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환대의 모범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환대하시고 당신을 환대하는 우리 모두를 

환대의 사람, 평화의 사람으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의 환대를 통해 일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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