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 (화)
(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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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john1004] 쪽지 캡슐

1998-09-16 ㅣ No.134

+ 평화!

 살아가면서 그래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도 합니다.
오늘 문득 읽고 싶었던 시 한편을 올립니다.

  
강가에서
                         - 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둑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쪽 뚝 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 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어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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