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도보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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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beadro] 쪽지 캡슐

2003-05-13 ㅣ No.387

               死 生 間  天 主 敎 人

 

 

 저는 지난 8월 하기 휴가때 미사리에 있는 구산 성지를 출발하여 팔당땜 있는 곳의 마재를 넘어 정약용 생가를 들러 보고 양평을 돌아 용문성당을 거쳐 풍수원 성당, 횡성 원주, 배론을 도보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배론에서 제천을 거쳐 연풍으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태풍이 와서 제천에서 돌아오게 되었다. 그 과정을 망설이다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이곳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4박5일간의 일정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12시경 미사리 구산성지에 도착을 해보니 11시에 있었던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 전날 구산성당으로 미사 안내를 물어봤으나 미사가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서울 시내에서 아침미사를 드리고 출발을 했는데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정을 알아보니 내 실수였다. 구산에는 구산 성당이 있고 구산성지 성당이 있는데 나는 성지성당으로 물어보지 않고 구산성당으로 여쭈었으니 ...............

오후 2시에는 성지(순교선열)에 대한 수녀님의 강의가 있어서 망설이다 강의는 포기하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구산 성지는 아직 다 개발이 되지 않았지만 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울안에 왼쪽에 성인의 묘소와 마당을 건너 조립식이지만 성당이 있다. 성당 앞마당에는  성인의 묘소를 중심으로  십자가의 길이 있고 밖으로 나오면 안내소 및 사무실이 있어서 그런대로 정리가 된 느낌이였다. 교구 구역상 수원교구로 되어 있지만 서울에서 별로 멀지 안아 찾아가기가 쉽고 구산에서 남한산성 성지와 천진암으로 한 바뀌 돌면 가족단위의 성지순례의 한 코스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아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겠지만 성인의 묘소와 1㎞안에 있는 순교자들의 묘소들은 손질이 너무나 되어 있지 않았다. 경주김씨들의 가족묘 같은 곳에 여러구의 순교자들의 묘들이 숲풀속에 묻혀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이 순례가 끝나고 돌아와서 벌초를 해야지 다짐을 해 보았지만 차일 피일 미루다 추석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이곳에 왔을때는 순교자들의 묘를 찾지 못했는데(안내 팜프렛에는 안내가 되어 있음)이번에는 찾아 기도를 드리고 예를 표하기는 했지만 여간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었다.

이름없이 수없이 죽어간 순교자들......... 우리는 가문있고 벼슬 있고 배움있는 순교자들에게만 우선적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구산성지에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순교현양비와 성인의 묘소. 그리고 부근에 순교자등이 묘소가 있다. 성인은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요" 라는 말씀을 남기고 47세 되던 1841년에 순교하였으며 성인의 동생도 그해 2월에 순교했고 먼 훗날인 1868년에 구산출신 7명의 순교자가 또 탄생하기도 한 곳이다.

 

이곳을 출발하여 팔당대교를 건너 구비 구비 한강을 끼고 가다 마재를 넘어 정약용 생가에 도착하니 구산성지를 출발한지 3시간이 걸렸다.

정약용 생가는 이미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으며 공원관리소에서 안내를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정약용의 형제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실용주의를 선택한 한 위인으로 소개를 하는 현실앞에 마음이 아팠다. 해미 마을을 가 보면 성곽안에 있었을 감옥등 모든 것이 사라지고 특히 천주교 교인들이 치명했던 역사적 사실들이 잘 드러나지 않듯이 이곳 또한 교회와는 무관하게 개발되고 있기에 다산의 내면에 흐르는 그리고 그가 이룬 업적의 학문적 기초가 무엇이였는지 찾아보기 어렵게 된 점은 참으로 아쉬운점으로 남았다.

아직 다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

무거운 마음으로 묵주를 꺼내 마재를 넘어 양평으로 행했다.

배론의 남종삼 성인, 황사형 성인들이 잡혀서 이고개를 넘어 서울로 압송되었겠지 생각하며 고개를 넘었다.

국도를 따라 걷는 길은 참으로 길었다. 국수라는 곳에서 저녁 11시에 여장을 풀었으니 구산에서 1시에 출발한 것이니까 장장 10시간을 걸은 샘이다.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에 잠겼다. 성인들은 어디에서 밤을 세웠을까?

아침 8시.

다시 출발했다. 더위와 고독과의 싸움이였다. 기도하다 지치면 성가를 부르고 성가를 부르다 다시 기도를 하면서 걷기를 반복하다 3시경에 용문성당에 도착을 하니 몸이 천근만근이 다되었다. 마당에는 주일학교 학생들의 여름성경학교가 한창 진행중이였다.

저녁 11시 풍수원 성당 12㎞ 전방 청운에서 지친 몸을 풀었다.

특별히 하루에 얼마큼 가겠다는 목표를 정하지 않았기에 가급적이면 유흥지 같은 곳에서 자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숙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숙소를 찾을 때까지 걷다보니 이렇게 늦게까지 걷게 된 것이다.

아침 8시.

다시 출발했다. 풍수원으로 들어가는 골이 아주 깊었다. 12 ㎞를 들어가니 고개가 나오고 고개를 넘으니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풍수원 성당이 나왔다.

이곳은 여러 번 왔기에 지친 몸을 쉬기에는 아주 좋았다. 성당이 아직도 마루 바닦 이여서 시원했으며 자료실에서 이것 저것을 살피면서 100여년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였다. 십자가의 길이 성모동산을 올라가면서 조성되어 있으며 판화가 이철수씨의 14처는 새로운 느낌을 준다. 풍수원 성당에는 공의회 이전의 제대를 볼 수 있는 것도 특색이다.

오후4시. 원주는 36㎞. 횡성은 18㎞가 남았다. 배론을 향해서 저녁 11시까지 걸으면 원주를 갈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 일단 횡성까지만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청운에서 풍수원으로 들어온 골도 깊었지만 풍수원에서 횡성까지 나오는 길도 아주아주 길었다.

앞 뒤로 이렇게 골이 깊으니 관아에서 쉽게 잡으러 오지 못했을 것이구나 하고 생각이 미치니 이렇게 깊은 곳으로 들어와 신앙을 지키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쿨해진다. 무엇을 위해 이런 오지로 발길을 향했을까?

지쳐 흐르는 냇물로 식욕을 다스리며 걸었다.

그래도 풍수원에서 약 4시간을 머물어서 몸이 회복되었는지 횡성까지는 3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횡성까지 오는 길은 다리가 많이 아파 내리막길은 뛰었다.  걸으면 다리가 쥐가 날 것 같아 뛴 것이 시간을 단축한 것 같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다.

주일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나니 1시. 다시 출발하였다. 원주 18㎞.

원주 시내를 통과하여 치악산 자락을 접어드니 오락가락 비는 오고 시간은 저녁으로 접어들어 어떻게든 저녁에 치악산을 넘을 양으로 걸음을 제촉하니 11시에 용소막 성당 입구에 도착을 했다. 배론에서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이 고개를 넘었을까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났다.

다음날 용소막 성당에서 한 시간을 머물렀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남종삼 생가에서도 한시간을 머물렀다. 몇 차례 왔었지만 십자가의 길을 하지 않았는데 십자가의 길도 바치고 성인의 생가 방에서 쉬면서 그분의 생각에 머물러 봤다. 또 공소에 가서 성인의 유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나는 이분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뭉쿨하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참고로 한국천주교 순교자 중에서 가장 벼슬이 높은 분이 이분이다)

배론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되어서 4시에 출발하게 되었다.

배론에는 최양업 신부님을 기념하는 기념성당이 웅장하게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주 아름다웠다.

미리내에 가면 김대건 신부님의 기념성당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듯이 이곳도 배 모양을 연상하는 기념성당은 세남터의 기념성당에서 보는 맛과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성직자 묘지에 가서 무릎꿇고 기도를 드렸다. 이분들과 돌아가신 모든 교우들의 잘못을 보지 마시고 믿음만을 봐 달라고 , 그리고 이 불쌍한 죄인도 봐달라고 기도 드렸다.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 앞에서 이 분의 묘비가 세워지기까지의 여러 우여곡절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길이 순례의 길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을 해 보았다.

배론에는 배론 신학당터를 제공한 장주기 요셉 성인을 기리는 기념성당이 있는데 성당 제대에 모셔져 있는 유해와 성당 입구에 표시된 유해 안내가 다름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제대에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유해와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데 안내에는 최양업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쓰여져 있던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이겠지만 우리가 성지를 순례할 때 이러한 부분도 신경을 써서 봐야 할 것이다. 돌아와서 성지 관리소에 이런 사실을 알렸고 바로 잡았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연풍성지를 향하여 제천에 도착하니 저녁 8시. 억수같이 내리는 비속을 더 갈 수 없어 일찍 자리에 들었다. 아침 뉴스에 태풍이 상륙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아쉽게도 순례를 중단하였다.

나는 성지를 자주 찾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을 잡고 순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휭 하니 성지를 찾곤 한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 마음에 새롭게 뜨거움이 일어난다. 내년에는 안양의 최양업 신부님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이 계신 곳을 시발로 공주 황새바위까지 가봐야지 하고 다짐을 해 보았지만 이제 멀리 떠나게 되어 실행이 어렵게 되었다.

 

몇일전 외국 신학생과 이곳을 자동차로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었다.

걷는 것과 아주 차이가 있고 느낌도 달랐다. 그런데 가장 아쉬운점은 성지마다 외국어로 안내가 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참으로 아쉬웠다.

 

순례시 어려웠던 것은 잠자는 것과 먹는 것 이였다.

길 주변에 음식점에서는 오리탕. 영양탕등등 비슷한 음식점이 많고 된장국이나 간단한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용소막에서 배론까지 일반 음식점을 찾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숙소도 몇시에 어디까지 갈수 있을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예약을 할 수 없었다.

혹 다른 사람들이 이런 순례를 한다면 일반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이 편할 수 있다. 평지의 아스발트나 세멘트 길이기에 등산화는 무거운 느낌을 준다.

차도를 따라 가기 때문에 차를 바라보고 걷는 것이 안전에 도움이 된다. 차 가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뒤 차를 볼 수 없어 좀 위험할 수 있다. 순례중 가끔 비를 만나게 되었는데 우산은 근물이며(앞에서 오는 차를 볼 수 없음)그래서 창이 있는 모자가 필수이다.

도보중 갈증이 심한데 보리차가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최고인 것 같다. 단 음료를 많이 마시면 소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성지순례는 관광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성지에서 한 시간 이상은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

끝으로 성지개발에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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