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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 (루카1,57-6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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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6-24 ㅣ No.147839

 

2021년 6월 24일 목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그의 이름은 요한 (루카1,57-66.80)

   

 

1독서<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49,1-6)

섬들아내 말을 들어라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귀를 기울여라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이스라엘아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화답송 시편 139(138),1-3.13-14ㄱㄴ.14-15(◎ 14)

◎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당신을 찬송하나이다.

○ 주님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당신은 제 오장육부를 만드시고어미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나이다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당신을 찬송하나이다당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옵니다

○ 제 영혼이 잘 아나이다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땅속 깊은 곳에서 짜일 때제 뼛속까지 당신께 드러났나이다

 

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사도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나는 그분이 아니다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복음<그의 이름은 요한이다.>(루카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이사49,1-6)

 

"섬들아내 말을 들어라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귀를 기울여라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어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이스라엘아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1~4.6)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이다(49,1~7).

여기서는 주님께서 종을 태중에서부터 부르셨다는 것(1~3)과 주님의 보상 선언(4)과 주님께서 종의 사명을 이루고 영광과 승리를 얻게 하신다는 사실(5~7)이 제시된다.

 

이같은 내용으로 시작하는 본문은 주님의 종 자신이 앞으로 제시할 내용을 이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마땅히 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법정의 상황에서 증인을 소환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데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본문은 하느님께서 메시야를 부르심이 모든 이들이 다 받아들일만큼 매우 분명한 사실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섬들아내 말을 들어라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귀를 기울여라.'(1)

 

'섬들'에 해당하는 '이임'(yiim)은 매우 먼 지역에 떨어져 있는 민족들세상의 땅 끝에 사는 민족들을 상징한다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전혀 관계없는 민족들주님의 이름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민족들이스라엘이 생각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민족들을 대표하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귀를 기울여라'에 해당하는 '웨하크쉬부'(wehaqshibu)는 '깊은 주의를 기울이다', '청종하다', '순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카샤브'(qashab)의 사역 명령형이다즉 본문은 점층적 동의 대구법이 사용되어 모든 민족들이 다 주의를 기울여 메시야의 말씀을 들어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1)

 

주님의 종이 자신의 소명의 기원을 강조하여 밝히는 표현이다원문은 동사 앞에 주어가 선행하여 부르신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부르시고'라는 표현은 소명과 관련되어 있으며, '모태에서부터'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구원에 의한 절대적 선택과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크신 섭리를 나타내고 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간택하심에 따른 주님의 종의 권위를 부각시키고 있다특히 '모태에서부터'라는 표현은 종의 사명(소명)이 그의 일부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존재 자체가 사명(소명)을 위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에 해당하는 '히즈키르'(hizkir)는 '기억하다'라는 의미의 '자카르'(zakar)의 사역형으로서 '특별히 기억하다','언급하다','부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에 해당하는 ''(shem)은 단순히 호칭만을 나타내지 않는다이것은 그 이름으로 불려지는 대상의 존재 자체나 인격이나 일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것은 그의 일과 삶을 완전히 책임지고 해 놓으셨다는 의미이며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독립적이고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본문도 주님의 종의 사명은 종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여하신 것임을 보여준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2)

 

본절에서는 주님께서 주님의 종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비하시고 보호하셨음을 보여준다주님의 종의 사명이 <말로 하는 활동>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50,4). 여기서 '날카로운 칼'이란 큰 영향력이 있는 말씀을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은 주 하느님께서 주님의 종을 하느님의 권능의 말씀으로 채우셨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이렇듯이 하느님의 권능의 말씀(히브4,12)으로 무장한 주님의 종은 그 말씀을 선언함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될 것이다.

 

메시야의 전쟁은 무력을 통한 전쟁이 아닌 말씀을 통한 영적 전쟁이 될 것이란 예언으로 이해 할 수 있다'당신의 손'에 해당하는 '야도'(yado)의 원형 '야드'(yad)는 '권능'과 '능력그리고 '소유'의 의미도 내포한다.

 

'그늘에'에 해당하는 '베첼'(betsel)의 원형 ''(tsel)은 '어둡다'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여 '그림자','그늘'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늘이 더위로부터 막아준다는 의미에서 파생한 것으로서 위험을 피하게 하여 안전하게 지켜주는 보호를 나타낸다.

 

'숨겨 주셨다'에 해당하는 '헤흐삐아니'(hehbiani)는 '하바'(haba)의 사역형으로서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숨겨줌을 나타낸다(여호6,17; 1열왕18,4).

주님께서 그 종을 가장 적합한 순간에 세상에서 일을 하게 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구원 사업의 과정 하나 하나에 완전히 섭리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2)

 

'화살'에 해당하는 '레헤츠 빠루르'(lehets barur)는 정성스럽게 마름질하여 끝이 날카롭게 된(갈고 닦은화살촉을 의미한다이런 화살은 한 번의 발사로 적의 심장을 뚫어 버릴 수 있는 치명적 무기이다.

상반절의 '날카로운 칼'이라는 표현과 동의적 대구를 이루고 있는 이 표현은 영적으로 원수들을 단숨에 제압하고당신의 백성을 구원할 능력의 말씀을 상징한다그리고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라는 표현은 '당신의 손 그늘에 숨겨 주셨다'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주님의 종을 사용하시기 전까지 철저하게 보호하여 주심을 나타내고 있다.

 

만약 아무렇게나 보관한다면화살은 부러지거나 혹은 날이 무디어져서 전투의 도구로서 제대로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정한 날에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완벽히 보호하여 보관하신다는 것이다(갈라4,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너는 나의 종이다이스라엘아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3)

 

여기서 ''에 해당하는 '아브띠'(abdi)는 '섬기다','일하다'의 의미의 '아바드'(abad)에서 유래하며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일반적으로 사람의 소유물인 노예나 왕국의 가신(1사무19,1)을 언급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겸손을 나타낼 때에 사용한다(창세 33,5). 그러나 본문에서 이 종은주님을 지칭하는 1인칭 접미어와 결합하여 '주님의 종'으로 표현되고 있다.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에 해당하는 동사 '에트파아르'(ethpaar)의 원형 '파아르'(paar)는 어떤 물체가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영화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본문에서는 재귀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되 그의 종을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너에게로'로 번역된 '뻬카'(beka)는 '메시야의 삶과 사명을 통해서'라는 의미이다오직 주 하느님의 말씀대로만 사는 메시야의 삶과 무죄한 자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은 메시야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요한17,4).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4)

 

본절에 제시되는 '주님의 종'의 한탄은 실패할 것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며 메시야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것을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메시야의 고난과 메시야의 인성(humanity)과 관련된 예언이다.

 

메시야는 이 땅에 오신 처음부터 구원사업을 마치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했을 뿐 아니라(요한1,11; 마태26,56) 무죄한 자기 몸을 바쳐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인류를 향하신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의심하는 자가 있었다(마태28,17). 그런 측면에서 그의 죽음은 헛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그러니까 본절의 상반절은 메시야의 한탄을 나타내는 예언이지 결코 메시야의 사명이 실패할 것을 말하는 예언이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메시야가 이러한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는 사실은 바빌론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내 권리'에 해당하는 '미쉬파티'(mishipati)의 원형 '미쉬파트'(mishipat)는 법정에서 법과 규정에 따라 판결 및 심판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샤파트'(shapat)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심판','판결','판단','공의'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에서는 메시야가 행하는 구속 사업의 정당성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내 보상'에 해당하는 '베울라티'(beulati)의 원형 '베울라'(beula)는 공들여 행한 일에 대해 주어지는 정당한 보상(reward)을 의미한다 (레위19,13; 잠언11,18; 에제29,20).

 

본절의 상반절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외견상으로는 자신의 사명이 완전한 실패로 보이는 상황에 직면해 있을지라도주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진 주님의 종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통한 열매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메시야가 받을 보상은 죄인들이 새 생명을 얻는 것과 자신이 하느님 보좌 오른편에 앉아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히브12,2; 1베드2,24).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6)

 

'지파들을'에 해당하는 '쉬브테'(shibte)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나타내는 표현이다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지파간 골육상쟁의 비극이 끊이지 않았으며 (판관12,6; 21,15) 북과 남으로 나뉘어 결국에는 둘 다 멸망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종을 통하여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끊으시고열 두 지파를 단 하나의 지파도 끝이 나지 않게 완전하고도 온전히 회복되게 하신다는 것이다오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에 제1독서로서 이사야 예언서의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를 묵상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류의 첫 사람의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 남용으로 원죄를 지어 멸망과 저주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세속사(인간사)를 무죄한 메시야의 겸손과 순명과 자유선용으로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기로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계획하셨다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며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선구자 역할을 하도록 여자가 낳은 사람중에는 가장 큰 사람으로 엘리사벳 모태에서 부르시고어머니 배 속에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이사야서 49장 2절 이하의 말씀과 사명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교회의 전례력안에서 성인 성녀들은 모두 죽어 천국간 날을 기념하여 축일이 정해지는데유일하게 죽은 날(예수님은 성금요일/성모님은 815일 성모승천/세례자 요한은 829일 수난기념일)과 함게 탄생일을 기념하는 분은 세 분 뿐이시다바로 원죄없으신 예수님의 성탄(12.25), 성모님의 성탄(9.8)과 오늘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이다.

 

세례자 요한은 엘리사벳에게서 수태되는 순간은 원죄를 가졌으나 예수님을 수태한 성모님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엘리사벳의 배안에서 뛰놀았다는 말씀안에서 원죄의 사함을 예수님때문에 받음으로써 출산시에는 원죄가 없었기 때문이다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엘리사벳에게서 하느님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어서 동정녀이신 성모님의 구세주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을 예표하는 징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정의와 심판을 근거로 회개를 선포하는 삶을 산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제로 한 회개를 선포하는 삶을 사신 예수님을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끝으로그의 참수 치명은 구약 시대의 마감을 선포하고공적인 메시아 예수님의 시대가 시작됨을 알려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을 미리 예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레자의 요한 탄생 대축일을 보내면서 다음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르1,7~8)

 

주님 대전에 겸손되이 자신의 성소의 한계를 인정하며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그리스도가 점점 커져야한다고 말한 세례자 요한의 영성을 본받아야 하겠다그리고 주님과의 일치라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전제 조건이 의화(義化; justification)임을 설교와 구체적 실천적 삶으로 드러낸 세례자 요한의 다음의 메세지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살아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들 수 있다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마태3,8-10)

 

 

 

 

 6월 24일 수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카 1,57-66-69)

 

히브리어 콜(소리)은 *코프(파괴하고 다시 세우다)와 *라메드(교훈하다가르치다)로 되어있다파괴하고 다시 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서 알게 하는 것이 콜-소리그 소리로 깨달아 옛것을 부수고버리고(죽고다시 일어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루가1장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히브리인들은 아기 이름을 조상들의 이름 중에서 선택한다(조상의 뜻을 이어 받겠다는 의미)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주신 이름으로 옛 이름()은 안된다는 의미.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옛것을 버리자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큰 인물을 아들로 주시겠다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자~

(루가1,20) 보라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 없는 옛 입을 막으셨던 것이죠.

 

자신이 믿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입이 열리자,

(루가1,67-69) 67 아기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찾아오시는 것이 그리스도(基督)교입니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이 아기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소리가 될 것입니다.

 

(요한1,23.29)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어떻게 없애시나세상의 모든 죄를 다 받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이사53,4-7)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하느님께 매맞은 자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듯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 인간이 자신들의 희생빵을 드리는 것이 아닌 하늘의 희생제물빵을 받아 먹는 것입니다.

 

(요한6,48.51)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사람(피조물)은 하느님(창조주)으로만 존재일 수 있는 것이지요하늘의 빵을 먹어야 하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탈출16,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6,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하늘의 빵을 파스카의 고기로 먹기 위한 모든 행위는 저녁(어둠)의 양식인 것이고 그 옛것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피로 맺은 새 계약으로 먹으면 아침()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희생열성의로움이 아닌 하늘의 희생열심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 그 의로움으로 사는 곳이 하느님 나라죠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소리입니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 소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아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복음(루카1,57~66.80)

 

"여드레째 되는 날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됩니다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59~60)

 

'할례식에 갔다가'로 번역된 '페리테메인'(peritemein; to circumcise)의 원형 '페리템노'(peritemno)는 원래 '둘레를 자르다', '칼자국을 내다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할례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 성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할례식을 통해 그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된 백성임을 드러냈고(1사무17,26), 또한 하느님과의 계약의 표징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임을 인정받았다(창세17,11).

 

그리고 이 할례는 출생 후 여드레째 되는 날에 시행했는데그 이유는 아이를 출산한 여자가 이레 동안 부정했듯이(레위12,2) 그 아이도 부정한 것으로 여겨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통해 이레 동안의 부정을 깨끗히 씻어 버리고하느님의 약속에 힘입어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갔다가'로 번역된 '엘톤'(elthon; came)은 '오다'의 뜻을 가진 '에르코마이' (erchomai)의 부정(不定과거 3인칭 복수형으로서 '그들이 왔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들은루카 복음 1장 59절 후반절에서 아기의 이름까지 지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즈카르야의 가까운 친척들이거나 아웃들로 여겨진다원래 자녀의 할례는 가장(家長)에 의해 시행되는데친척들과 이웃들이 함께 참석하여 공개적인 의식으로 치러진다.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은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로 짓고자 한다여기서 '부르려 하였다'로 번역된 '에칼룬'(ekaloun; they called; they were giong to name)은 '부르다', '이름하다등의 뜻을 가진 '칼레오'(kaleo)의 미완료 과거로서 이름을 짓고자 했던 자들의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즉 행동의 반복이나 계속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가 사용된 것은 그들이 그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로 부르고자 계속 고집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러한 고집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아기의 이름을 짓던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 풍습과 이름을 중요시했던 유다인들의 사상적 배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그러나 아기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척들과 이웃의 주장을 따르지 않고하느님의 뜻에 따를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엘리사벳은 루카 복음 1장 13절의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는 천사의 예언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에 따라 자식의 이름을 짓는 사회적 통념에도 불구하고자신있게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가 아닌 '요한'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엘리사벳의 이러한 담대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요한'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인의 이름으로는 흔한 것인데(1역대12,5.13), '주님의 은총', '주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의 히브리어 '요하난'(yohanan)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따라서 '요한'이라는 이름은 늙어서 수태할 수 없었던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게 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과세례자 요한을 메시야의 길을 미리 예비하는 자로 세우셔서 사람들을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하느님 은총의 통로가 되었기에, '요한'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큰 은총이 잘 표현되고 있는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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