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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ㄱㄹ가 하면 로맨스, 조선일보가 하면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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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5-06-29 ㅣ No.88

장원준의 이슈 빨간펜] 한겨레가 하면 로맨스, 조선일보가 하면 불륜?
입력 : 2005.06.29 01:57 10'


▲ 장원준 사회부 기자·PD
※ 이 텍스트는 조선일보 동영상 ‘갈아만든 이슈’의 한 코너인 ‘장원준 기자의 이슈 빨간펜’을 통해 6월28일 방영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갈슈 프로듀서인 조선일보 장원준 기자입니다.

오늘은 좀 우울한 주제로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그동안 RTV를 통해 갈슈를 접하시고 아껴주셨던 시청자 여러분과는 이달 말을 마지막으로 작별하게 됐습니다. 물론 조선일보 인터넷사이트인 조선닷컴의 VOD 서비스를 통해서는 오는 7월 이후에도 뵐 수 있습니다. 주제가 가라앉는 내용이니, 분위기라도 애써 좀 밝게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시쳇말 들어보셨죠? 이슈 빨간펜의 모토가 이 코너를 보신 시청자께서, 편안한 만남이나 술자리 같은 곳에 가셔서 화제로 삼으실만한 반찬거리을 제공해드린다는 것이니, 비슷한 시쳇말을 몇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하면 건실한 투자, 남이 하면 나라 망치는 투기”란 말도 있구요, “내가 ‘더치 페이’ 하자는 것은 건강한 합리주의고, 남이 ‘더치 페이’ 하자는 것은 치사한 이기주의’란 말도 있습니다.

“내가 술잔 돌리면 정(情)을 나누는 것이고, 남이 술잔 돌리면 위생관념 없는 것”이라고도 하고 “내가 차를 천천히 몰면 안전운전이고, 남이 천천히 몰면 소심운전”이라고도 하지요.

얼마전 사석에서 제 친구는 “내가 껄껄 웃으면 유쾌 통쾌 상쾌, 남이 큰 소리로 웃으면 시건방 왕무례, 내가 울면 격정토로, 남이 울면 ‘지지리 궁상’이라고 한다”고 비틀더군요.

안타깝고 섭섭하게도, 지금 저는 이 말들을 떠올립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RTV가 28일자로 보도자료를 내고, 6월30일을 마지막으로 ‘갈아만든 이슈’ 방영을 중단한다고 밝혔거든요. 저는 갈슈의 방영 이전부터, RTV 종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RTV는 2004년, 그러니까 작년 5월부터 한겨레신문 콘텐츠로 제작된 동영상 ‘한겨레 인사이드 현장’을 방영해왔습니다. 지난 4월까지 1년 가까이 방송되는 동안, RTV 운영위원회나 소위 ‘시민단체’는 한겨레 동영상의 RTV 방영을 전혀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6일 조선일보 콘텐츠인 ‘갈슈’가 방영되기 시작하자 갑자기 RTV 운영위원회나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신문사 콘텐츠의 RTV 방영은 말도 안된다”는 요지의 성명과 반발이 쏟아져나왔습니다.

RTV 내부에서조차 “한겨레가 할 때는 가만 있다가 조선일보가 한다고 문제 삼는 건 명분이 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방영과 함께 반발을 쏟아낸 인사들꼐서는 “글쎄, 조선일보가 하는 것은 무조건 불륜이고 망국적 투기이고 지지리 궁상이다”라고 생각하시는지, 이렇게 “조선일보 동영상만 문제 삼는 건 명분 없다”는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2개월20여일만에 RTV 갈슈 방영의 문을 닫아버리는 데 성공했지요.

사실 RTV 운영위원들을 비롯, RTV 안팎의 인사들은 누가 보아도 이념이나 지향 면에서 조선일보보다는 한겨레에 훨씬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1년 동안 한겨레가 할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문제점들이, 조선일보가 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겁니까? ‘나는 로맨스, 너는 불륜’, ‘나는 격정, 너는 궁상’ 식의 잣대가 아니고는 어떻게 이런 불공평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제가 종영 보도자료를 받고 어이가 없어 이런 요지의 질문을 하자, RTV 내부의 일부 인사들도 “할 말 없다”고 하시더군요.

세입자에게 방을 빼라고 할 때도 1~2개월의 말미는 주는 법입니다. 하지만 RTV는 어젯밤과 오늘 아침, 그러니까 27일 밤과 28일 아침에 “3일 후 종영한다”는 이메일과 보도자료를 일방적으로 보내왔을 뿐입니다. 참 섭섭합니다.

RTV는 매년 10억~20억원씩의 방송발전기금을 받는 단체입니다. RTV 운영위원회에는 소위 ‘시민단체’의 대표나 간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RTV의 갈슈 종영은, 정부가 지원하고 소위 ‘시민단체’ 회원들이 주도하는 조직이나 세력이 얼마나 편파적이고 불공평한 잣대를, 얼마나 ‘당당하게’ 들이댈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이 주도해나갈 것으로 추정되는 소위 ‘개혁’도 걱정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개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언론피해구제법에 따르면, 언론보도가 국가적 사회적 법익을 침해할 경우 피해자가 아니라 제3자가 시정 권고를 신청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이 ‘시정 권고’라는 게 참 연구 대상입니다.

‘국가적 사회적 법익’이라는 개념도 일단 명쾌하지 않지요, 그런데 이런 불분명한 명분을 내걸고 대체로 이른바 ‘시민단체’가 주축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 제3자들이 언론에게 ‘시정 권고’를 해달라고 언론중재위에 신청을 하면, 언론중재위는 이를 분석해서 시정 권고를 하게 됩니다. 시정 권고를 하게 되면 이를 널리 알리게 돼 있지요. 신문사들로서는 부담을 안 느낄 수 없고, 따라서 언론중재위나 ‘단골 신청자’들 눈치를 안 볼 수 없게 됩니다. 일부 법조 전문가들은 이 조항을 비롯, 언론관계법의 여러 부분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헌 여부를 떠나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법이 정말 시행된다면, 이에 따라 시정 권고에 대거 나설 ‘단골 신청자’들은, 한겨레가 1년 동안 동영상 방영할 때는 전혀 문제를 발견 못하다가, 조선일보가 똑같은 일을 하자마자 문제점이 확확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결국 갈슈를 끌어내렸던 이상한 판정관들과 겹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RTV 관계자 여러분께도 갈슈 제작진을 대표해 심심한 석별의 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오는 30일까지 성실하게 프로그램을 제작해 찾아뵙겠습니다. 또 RTV를 통한 시청자와의 만남은 막을 내리더라도, 조선닷컴 등 다른 통로를 통해 ‘뉴스 소화제 갈아만든 이슈’를 시청자 여러분과 계속 공유하겠습니다. 갈슈의 막은 내리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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