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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지겹게 만드는 여야 다툼엔 敗者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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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1-19 ㅣ No.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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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로 정국 정상화의 실마리가 풀리길 바랐던 기대는 일단 무산됐다. 박 대통령은 18일 취임 이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포함해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합의점을 찾으면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은 국회이며 국회 안에서 논의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회를 존중하기 위해 앞으로 매년 정기국회 때마다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며 의원들의 협조를 구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여야의 대치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야당은 국정원 댓글 사건 특검과 국회 국정원 개혁 특위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여당은 국정원 특위 구성을 수용하기로 했지만, 민주당은 특검 도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날 "대통령이 또다시 야당과 국민을 무시했다"면서 대통령이 국회를 떠나자마자 의사당 앞에서 '시정연설 규탄 집회'를 열었다. 국정원장·법무부장관·보훈처장 해임 촉구 결의안도 내기로 했다.

이제 우리 정치는 정상 궤도를 탈선해 넘어져 버린 상태다. 야당은 대선 패배 한풀이와 당내 계파 간 주도권 다툼에다 내년 지방선거 전략까지 얽히면서 여당과 합리적 대화에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여당은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 끼여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무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이 정치판이 갈 길은 뻔하다. 야당은 특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새해 예산안과 주요 법안 처리를 전부 막겠다고 나올 것이고, 여당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속수무책일 것이다. 나라 살림을 돌리는 예산은 물론이고 경제 활성화, 복지·부동산 대책 같은 민생 법안이 모두 묶이면서 국가가 마비 상태에 빠지는 최악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여당은 예산안과 민생 법안을 볼모로 잡고 정치 투쟁을 벌이는 야당에 대한 국민의 비난이 커지면 결국 야당이 백기를 들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야당은 욕을 먹더라도 예산과 법안을 끝까지 막고 있으면 청와대가 손을 들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상대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어떻게든 상대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힐 궁리만 하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더 많은 국민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정당의 정상적 경쟁이 아니라 '죽기 싫으면 길을 비키라'는 식의 폭주(暴走)일 뿐이다. 이런 정치 폭주는 여야 모두의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여야는 지금 마주 보고 달리다가 담력이 약해 피하는 쪽이 지는 승부, '치킨 게임(chicken game)'을 하고 있다. 이렇게 국민을 지겹게 만드는 다툼에선 모두 패자(敗者)밖에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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