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토)
(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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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요일 (홍)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낮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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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6-29 ㅣ No.147939

1독서<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1-11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헤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글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작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하고 이르니 베드로는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지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난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아나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 역주 정태현 신부님)

1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이 헤로데는 헤로데 대왕의 손자인 아그리빠 1세를 가리킨다.

 

2

주님의 형제라는 다른 야고보와 구별되는 야고보는 예수를 제일 먼저 따른 제자 중 하나이고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예수와 특별한 친분을 맺었다. 그의 죽음으로 스테파노가 순교한 뒤에 예루살렘 교회 지도부가 누렸던 평온한 시절은 끝났다.

 

3

해방절은 음력 314일 저녁 파스카 식사로 시작하여 7일 동안의 무교절로 이어진다. 루카는 무교절과 해방절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베드로의 체포와 예수의 체포를 해방절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하여 두 사건을 연결시킨다.

 

4

해방절이 지나가기까지 헤로데가 기다렸다는 보고는 그가 죄수의 처형으로 종교적 축제를 오염시키지 않으려 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교회의 으뜸을 박해하는 폭군 앞에서 교회가 적절한 행동을 취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려 함이다.

 

5

공동체의 기도는 무력하게 갇혀 있는 베드로를 기적적인 힘으로 구출시켜 줄 것이다.

 

6

군인 넷이 한 조가 되어 교대로 베드로를 감시하고 있었다. 둘은 순찰을 돌고 다른 둘은 두 개의 초소에서 베드로를 지키고 있었다. 두 개의 쇠사슬과 두 명의 감시병과 문 앞의 간수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사건이 매우 놀라운 일임을 강조한다.

 

7

사울에게 나타난 현시에서처럼 빛은 존재의 현존을 가리킨다.

 

10

베드로 앞에 저절로 열린 문이 철문이라는 사실은 이 사건을 더욱 놀랍게 만든다. 이 철문은 베드로와 천사가 빠져나온 뒤에 저절로 닫힌다.

 

11

천사가 떠나간 뒤 베드로는 제 정신을 차리게 된다.

헤로데의 권력과 유다인들의 사악한 의도가 연결된다. “유다인들과 종교적 의미를 띤 백성이 결합된 예는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여기가 처음이다.

 

 

 

 

 

 

 

2독서<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해(해제.역주 장 엘 마 르)

6

이 문단은 역사상 바오로의 말로 알아듣기 쉽지만 앞뒤 말이 모순되므로 바오로에 관한 사료를 이용하여 그럴듯하게 재구성했을 것이다.

 

17

10-11절과는 다른 상황에서의 사도의 의로움을 다시 서술한다. 모두 복음 때문에 갇혀 있는 바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그를 저버렸던 것이다. 바오로가 로마에서 재판을 받을 때 로마교회가 그를 돌보아 주지 않았던 일에 대한 추억이 16절에 반영된 것 같다. 그렇지만 첫번째 변론에 관한 말은 분명치 않다. 바오로는 보복을 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박해를 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의 모범으로 부각된다.

 

구출은 박해중에 주님이 바오로를 항상 보호하셨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으나 18절을 참조하건데 구원을 뜻하는 것 같다.

 

 

 

 

 

 

복음<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 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 역주 정양모 신부님)

16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마르8.29에선 단순히 당신은 그리스도인십니다인데, 마태오는 부연하여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한다. “살아 계신 하느님은 거짓 신들, 즉 생명이 없는 우상들과는 아주 다른 신이라는 뜻이다. 또한 살아 계신 하느님은 생명을 주시는 신이라는 뜻도 있다.“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과 지극히 가까운 분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이 예수께 내리신 칭호다.

예수님 자신이 아들로 자처하였다.

제자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섬겼다.

 

17

17-19절은 분명히 마태오가 13-16절과 20절 사이에 끼워넣은 삽입문이다. 그 중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행복선언은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해명인데, 이는 문맥을 고려해서 마태오가 만듥어낸 것이다.

 

바르요나를 아람어 합성어로 본다면 요나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요한 1.42: 21.15에선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이라 한다.

살과 피는 자연인간이란 뜻이다. 자연인간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고백을 할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의 계시가 내려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

18-19절에선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세 가지 약속을 하신다. 곧 시몬 베드로를 초석 삼아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교회 창립 약속,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는 약속, 매고 푸는 권능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같이 시몬 베드로를 매우 우대하는 약속들이다. 이 약속 말씀들은 에브로를 예수님의 수제자 교회의 으뜸 사도로 높이 받든 시리아 교회의 전승들이었는데 마태오가 그것들을 채집,수록했다. 다만 마태오가 세 가지 약속 말씀들을 모두 채록했다느 학설. 마태오는 교회 창립 약속과 매고 푸는 권능 약속만 채록했고 하늘나라의 열쇠 약속은 마태오가 만들어 삽입했다는 학설이 맞서고 있다.

 

시몬에게 주신 별명은 아람어로 게파다. 게파를 그리스어로 의역하면 페트로스 또는 페트라가 된다. 우리말 역문 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나는 이 바위 위에를 아람아로 되옮기면 그대는 게파입니다. 나는 이 게파 위에가 된다. 지금의 신약 원전 그리스어에서는 그대는 페트로스입니다. 나는 이 페트라 위에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게파라는 별명을 주신 것은 확실시되지만 그를 제자로 삼으신 때에 주셨는지 아니면 12제자 소집 때에 주셨는지 알 길이 없다.

교회는 칠십인역에서 유래한 낱말인데 히브리어 카힐을 에클레시아로 번역하곤 했다. 카할과 에클레시아는 모두 어원을 따져 보면 불러모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구약의 경우 카할과 에클레시아는 하느님이 불러모으신 이스라엘 백성 모임을 뜻한다.신약의 경우 교회는 하느님이 새롭게 불러모으신 그리스도인 백성 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뜻한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불러모으신 백성이요 모임이기도 한 까닭에 그리스도의 교회라고도 하는 것이다. 마태 복음서를 통틀어 교회란 낱말은 딱 두 번 오직 마태 16.18:18.17에만 나온다. 마태오는 교회와 유다인들의 회당을 엄격히 구별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평소에 예수께서 교회 설립 계획을 세우신 바 없다는 것이 신약학계의 통설이다. 그렇다면 18절은 마태오가 소속했던 시리아 교회의 교회관을 반영한다 하겠다. 18절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인격을 초석 삼아 당신 교ㅚ를 설립코자 하신다. 개신교계에선 교파적 선입견에 사로잡혀, 베드로의 신앙을 초석으로 삼았다는 설을 펴곤 하는데 어불성설이다.

 

명계의 문들은 명계 자체 또는 명계의 권세들을 뜻한다. 한 부분으로써 전체를 가리키는 셈족 사고방식이 들어 있다. 명계의 권세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내리누르지 못하는 까닭은 명계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종말까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지도자는 사람들이 거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 줄 권능과 책임이 있다. 그런데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늘나라를 잠가 버렸다. 그들 대신 이제 시몬 베드로가 그 열쇠를 물려받았다. 그럼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열어 주고 거기로 들어가게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명한 것을 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는길 밖에 없다. 특히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참뜻을 환히 밝혀주신 산상설교의 교훈들을 지키도록 가르쳐 마땅하다.

 

19ㄴ절의 변형태가 둘 있다.:“여러분이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요, 여러분이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들의 죄들을 사해 주면 그들을 위해서 사해질 것이요, 어떤 사람들의 죄들을 잡고 있으면 잡혀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한 사람에게 하신 약속과 더 오래된 전승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마태오는 두 약속을 상반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상보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요한 20.23의 사죄 약속은 후대 개작으로 보아 무방하다.

 

율사들은 두 가지 뜻으로 매다-풀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어떤 일을 금지하다-허용하다는 결의론적인 용법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을 파문하다-파문을 해제하다는 종단규법적 용법이 있다. 매고 푸는 권능을 베드로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다 들이 있겠다. 지상에서 베드로가 내리는 결의론적, 종단규범적 결정은 하늘에서도곧 하느님께서도 그대로 들어주신다하니 실로 엄청난 권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베드로는 제멋대로 결정해선 안되고 항상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윤리적 또는 교회규범적 결정을 내려 마땅하다. 또한 베드로는 홀로 결정하지 말고 온 교회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을 내려 마땅하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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