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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외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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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4-19 ㅣ No.4776

4월 20일 예수 부활 대축일-요한 20장 1-9절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예수님은 외출중>

 

언젠가 제가 제 정신 못 차리고 헤매던 그 어느 날, 언제나 마음의 고향처럼 여기던 신부님을 찾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갈 때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굳건히 서 계셨었고, 세파에 지쳐 찾아뵐 때마다 늘 그렇게 따뜻이 맞이해 주셨던 신부님이셨기에 연락도 드리지 않고 찾아갔었지요.

 

그런데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제가 산넘고 물건너 신부님 본당에 도착했던 그날, 신부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최근 지병이 도지셔서 요양차 다른 곳으로 잠시 가 계신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성당 언덕길을 돌아서 내려오면서 느꼈던 허탈감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나름대로 고풍이 풍기는 아담하고 소박한 성당이 서 있는 인상깊은 장소였지만 신부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었기에 제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떠한 장소나 공간보다는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제게는 다른 무엇에 앞서 가장 큰 의미였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오늘 요한 복음사가는 빈무덤에 관한 기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었지만 이미 그곳에는 예수님이 아니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계시지 않는 빈무덤, 그 무덤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떠나가신 그 빈무덤에서 서성대는 일은 별 의미가 없는 행위입니다.

 

우리 매일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지 않는 성전은 그분의 자취와 숨결이 사라져버린 빈무덤과 같습니다. 그곳은 별 의미 없는 하나의 공간일 뿐입니다.

 

길을 가다보면 눈에 뜨이는 것이 성당이요, 발길 닿는 곳마다 즐비한 것이 예배당이요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빛깔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공허한 빈무덤일 뿐입니다.

 

장엄한 전례의식이 그럴듯하게 거행되지만 그 성전에 돈만 밝히고 권위만 내세우는 성직자, 수도자만 존재한다면 그곳은 한낱 빈무덤일 뿐입니다.

 

엄격한 교계제도와 출중한 평신도 지도자들의 인도 아래 교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할지라도 그 공동체가 이 사회의 가장 약자인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노인들을 나몰라라하고 전혀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예수님이 떠나신 빈무덤에 불과합니다.

 

수백 수천이나 되는 건평에 각종 예술품으로 멋있게 장식된 성전이라 할지라도 가난한 이웃들과의 진지한 나눔이 없는 교회, 동시대 고통 당하는 이웃들과의 친교가 없는 교회라면 예수님께서 외출중인 빈무덤일 따름입니다.

 

시노드를 마무리하면서 성전 신축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사회사목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교회의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 이상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빈무덤으로 머물러있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살아있는 우리 이웃들 사이에 더욱 확실하게 현존해 계십니다.

 

오늘 기쁨과 축제의 부활절입니다. 더 이상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빈무덤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저 사바세계, 저잣거리로 기꺼이 내려가는 부활절이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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