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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가게시판

<라틴어 성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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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교 [ShinPaulus] 쪽지 캡슐

2001-03-10 ㅣ No.2351

다음 글은 제가 아마뚜스합창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비록 어줍잖은 졸저이나 성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쓴 글이오니 한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라틴어성가 이야기>

 

  필자는 1964년, 중학교 2학년때 영세를 했는데, 그 시절 성당 내부 모습은 이러했다. 전면에 커다란 십자고상이 걸려 있는 것은 지금과 같으나 고상 바로 아래에 제대가 있고 사제는 벽에 붙어있는 제대를 향하여 미사를 드렸기 때문에 신자들은 사제의 <등>을 바라보며 미사를 드려야만 했다.

  강론 등, 말씀전례때는 신자들을 향할 때도 있었지만 미사의 대부분을 신자들을 등진채(?) 뭐라 알아들을수도 없는 이상한 말로 미사를 집전하는 외국인 신부님은 <신비한 존재>이긴 했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나이가 든 후 성가대에 들어와 라틴어 성가를 배우면서 비로소 그 <이상한 말>이 라틴어라는 것을 알았으나, 처음에는 솔직히 <왜 좋은 우리말 놔두고 이런 노래를 불러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라틴어 성가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음절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깨우치면서 라틴어 성가는 신비한 매력을 풍기며 내게 다가왔다.

 

  라틴어는 고대 로마제국의 공용어이다. 그런데 <로마어>라 하지 않고 <라틴어>라 하는 이유는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市가 위치한 지역을 <라틴지방>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기지방>쯤 되는 셈인데, 전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에까지 걸쳐있는 거대한 나라인 로마제국에는 수 많은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라틴어는 자연스레 로마 상류사회의 표준어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아울러 <로만가톨릭>의 공용어가 되었다.

따라서 라틴어는 이천년 가톨릭 문화의 진수가 녹아있는 언어인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노래가사-노랫 말로써의 라틴어이다.

 

  무릇 모든 언어는 세월이 지나면 변하게 마련이지만 라틴어는 근대 서양언어의 뿌리가 된 이후로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람의 말>로는 사용되지 않고 오로지 가톨릭 문헌과 음악속에서만 존재하는 <변치 않는 말>이 되었다. 그리하여 고대의 수많은 작곡가들은 시편 등, 하느님을 향한 <변치않는 기도문>에 음표를 붙여 주옥같은 음률의 노래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표는 현대악보의 음표처럼 단음절로 독립된 것은 별로 없고 거의 복합음절로 연결된 음표라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Kyrie처럼 세음절로 된 단어에는 세음절짜리 음표가, Gloria처럼 네음절로 된 단어에는 네음절짜리 음표가 붙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레고리오 주제에 의한 다성음악 등, 옛 악보들을 현대 악보로 바꾸더라도 여전히 노랫말은 라틴어로 불러야만 운률이 제대로 맞는다. 물론 우리말 가사로 번역해서 개창용으로 불리워지는 좋은 성가들도 많지만 적어도 성가단원이라면 라틴어 성가를 도외시 해선 아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얼마전까지 필자의 본당에 계셨던 젊은 신부님 한분이 <라틴어성가 금지령>을 내려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지만,  라틴어 성가를 금지하고 우리말 성가만을 부르는 것을 마치 일제시대에 독립투사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 거는 일 처럼 <훌륭한 일>로 여김은 속 좁고 한심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대체로 음악을 잘 모르시는 <사목위원님>등, 라틴어 성가를 싫어하는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가대에서 그런 노래를 하면 아래층의 신자들이 무슨 뜻인지 잘 못 알아듣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신자들과 함께 부르는 개창성가라면 모를까, 어렵게 연습해서 성가대에서 부를만한 다성음악같은 곡을 우리말로 불렀다고해서 과연 신자들이 그 가사를 얼마만큼이나 알아듣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합창음악의 감동은 노래가사의 전달보다는 아름답게 조화된 화음과 일사불란하고 정연하게 절제된 합창단원들의 일치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제대를 중심으로 사제와 신자들이 둘러 서서 미사를 드리고, 다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전례상 훌륭한 발전임에 틀림 없지만, 소위 <개창운동>에 치중한 나머지 성가대를 개창성가를 위한 보조수단 쯤으로 격하 시키거나  라틴어 성가를 문화적인 사대주의 정도로 치부하여 배격하는 행위들은 가톨릭의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財寶-성음악 훈령> 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아마뚜스 합창단  신 문 교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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