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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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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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7-19 ㅣ No.5154

7월 20일 연중 제16주일-마르코 6장 30-34절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

 

 

<우산도 없이>

 

이른 아침 한 아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언젠가 이곳에서 살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몰골을 보니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 했습니다.

 

우산도 없이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온 것 같았습니다. 제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옷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바람이 불어 날씨도 꽤 쌀쌀한데, 런닝샤쓰에 반바지 차림이었고, 추위에 입술이 새파랬습니다. 얼굴은 누구에게 얻어터졌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누구하고 싸웠냐? 언제 집에서 나왔냐?" 등등 물어볼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당장 아이의 몰골을 보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 2층으로 뛰어올라가서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았더니 우물쭈물하길래, 큰 대접에 우유를 잔뜩 붓고 콘브레이크를 가득 채워서 주었지요.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습니다. 또 한 그릇, 또 한 그릇, 합계 4그릇을 순식간에 끝냈습니다. 아마도 한 몇 일은 족히 굶은 듯 했습니다.

 

그제야 얼굴을 마주보고 물었습니다. "집에서 엄마와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여긴 이른 아침부터 왠일이냐?"

 

아이의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신부님 보고 싶어서요."

 

우산도 없이 장마비를 온 몸에 철철 맞으며 저희 집에 들어 선 아이, 옷이 다 젖어 떨고 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측은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눈여겨보신 하느님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쉴 새도 없이 침략 당하고, 끌려가고, 농락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량한 모습에 하느님의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자 없이 우왕좌왕하고 갖은 사악한 세력들에 이리저리 쫒겨 다니며 죽음의 길을 가던 동족의 모습,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윌 대로 야윈 양떼의 몰골을 눈여겨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측은한 마음으로 찢어질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결국 사목직의 본질은 "측은지심"입니다. 방황하는 양떼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 어떻게 해서든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양떼를 생명의 길로 돌아서게 하고픈 목자의 마음이 사목직의 핵심입니다.

 

양떼들이 비록 불순종하더라도 불충실하더라도, 배반과 타락의 길을 걷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큰마음으로, 측은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마음이 바로 진정한 사목자의 마음이겠습니다.

 

오늘도 이 시대 가장 길 잃고 헤매는 양들-재소자들, 길거리 청소년들, 노숙자들, 마약중독자들, 환락가 사람들-의 고통 앞에 함께 눈물 흘리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계시는 사목자들을 주님께서 축복해주시고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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