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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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오래 머물 수 있는 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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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silver0824] 쪽지 캡슐

2017-10-14 ㅣ No.115430




2017년 가해 연중 제28주일


<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복음: 마태오 22,1-14






 그리스도의 성면


 키예프 화파 작

 

  

초록색 옷자락을 휘날리며 신나는 모험을 찾아 날아다니는 영원한 어린이 피터 팬, 그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이며,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어린이로 남아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이 탄생하게 된 데는 다 사연이 있습니다. <피터 팬>7살 되던 해 스케이트를 타던 중 사고로 사망한 형의 죽음을 계기로 마음이 성장을 멈추어버린 작가 제임스 배리가 탄생시킨 작품입니다. 그가 창조해 낸 피터 팬의 내면에는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과정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사회 부적응의 심리가 들어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장하면서도 아이로 머물러있기에 어른 아이라고도 하고 피터 팬 신드롬이라고도 부릅니다. 사회인으로서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감정적이며 아이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작가 제임스 배리의 형의 죽음은 어머니의 사랑까지 빼앗았습니다. 어머니가 배리의 형인 데이비드를 가장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형의 옷을 입고 형 행세까지 해 가며 어머니를 위로하려 했습니다. 배리는 종종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는데, 어느 날 방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데이비드 너냐?” 하고 물었습니다. 배리가 , 배리에요.”라고 대답하자 어머니는 다시 등을 돌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배리는 강한 분노와 좌절을 느꼈고 그렇게 그의 성장은 멈추고 말았던 것입니다. 배리는 나는 형이 죽은 나이 13살이 되면서부터 일부러 성장을 멈추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노와 좌절은 마치 꾸어 준 돈을 받지 못해 그 생각만 하게 된 수전노처럼 어머니의 관심에 대한 집착만 남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또 다른 데이비드가 되기 위해서만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분노와 좌절을 넘어서지 못한 배리가 성장하여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몸만 컸지 마음은 여전히 아이로 남아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만들어 낸 피터 팬처럼 자신의 맘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또 책임지지도 않는 사람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하고도 아내와의 사이가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피터 팬의 모델이 된 피터 르웰린 데이비스는 성인이 된 뒤 알코올 중독과 의욕 상실에 빠져 절망의 나날을 보내다 지하철에 뛰어들어 63세의 나이에 삶을 마감합니다. 배리가 자신을 이용해 소설을 써 놓고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배리의 상태로 볼 때는 피터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감사해야 하는 사람은 피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어른-아이는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서라도 받아내야 하는 어린이입니다. 엄마가 아니면 받아줄 수 없는 그런 철부지 같은 마음까지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람은 당시 어머니에게 느꼈던 분노를 똑 같이 느낍니다. 어머니에게 빚진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그 빚을 갚아주지 않는 모든 사람은 다 자신에게 빚을 갚아야하는 빚쟁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조: 김혜남(정신분석 전문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 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인 사람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은 아드님의 혼인 잔치를 위해 사람들을 초대하는 임금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초대는 받았지만 거부하고 초대하는 종까지 박해합니다. 그러니 임금은 그들을 쓸어버리고 선한 사람, 악한 사람 할 것 없이 아무나 잔치에 초대합니다. 이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초대받은 사람 가운데도 혼인의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이 의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고 성당을 나오는 우리는 적어도 초대에 응한 사람이니 의복을 입지 않아 쫓겨난 사람처럼만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 의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혼인 의복을 입고 앉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기쁘게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그 잔치를 매우 불편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다만 구원받아야 하기 위해 억지로 앉아있는 것입니다. 저도 친구 생일잔치에 뚫어진 양말을 신고 갔다가 창피해서 지옥을 체험했습니다. 만약 미사에 나와 즐겁지 않고 억지로 있다면 그런 사람은 미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것입니다. 미사가 행복하지 않다면 옷을 입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 의복을 입지 않고 와서 그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음속에서는 자신이 그 잔치에 참여하여 자리를 채워주기 때문에 임금에게 어떤 일을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에서 사랑 받지 못한 불만을 가진 배리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은 어머니를 그 사람에게 덮씌워서 누구와 관계를 맺든 자신에게 더 해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상대에게서 점점 더 많은 불만사항을 찾아내며 그래도 만나주는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가 감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이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혼인잔치에 나온 사람이 반드시 입고 와야 하는 혼인의복이란 바로 감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사의 상징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혼인잔치인데 그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님께 대한 얼마의 감사를 가지고 참여하는지 살펴보아야합니다. 어쩌면 미사를 나와 주어 주님께 무언가 보답을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목숨을 내어주고 계신 주님 앞에서 아직 혼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영성지도 신부였고 고해신부였던 예수회 정일우 신부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빈자의 아버지, 판자촌의 성자라고 불렸던 그분은 미국에서 태어나 25살 때 한국에 와 3년 전 선종할 당시까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국가가 버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자고 웃고 울며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게 된 계기는 그분이 서강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다 가난을 체험해보기 위해 판자촌에 들어가 한 달을 살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그런데 그 체험이 너무 좋아 18년을 그들과 함께 살았고 이후에는 철거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려 10년 이상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분이 판자촌에서 한 달을 살고 깨달은 것은 나는 사람처럼 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처럼 살고 싶은 꿈을 갖게 해 준 참 좋은 사람들을 평생 많이 만나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 신부님을 사람처럼 살게 해 주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기에 그분은 그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반면 저는 행려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에 2주 간 봉사를 하였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2달 동안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를 했을 때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머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래 머물 수 없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머물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내가 일방적으로 무언가 해 주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기에게 피를 빨리는 사람이 계속 빨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받고 있다고 느껴야 머물게 됩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을 그렇게 머물게 했던 힘을 주었던 수단의 나병환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머물 수 있는 힘은 감사입니다.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참아내는 것이고 참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드님의 생명까지 내어주시는 하느님 앞에서도 감사하기는커녕 신세한탄만 하고 이것저것 해 달라는 기도만 드리다 갑니다. 감사를 입지 않고 왔다면 혼인 의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온 것입니다. 마지막까지도 그런 마음이라면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처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미사와 왔으면서도 빨리 나가고 싶어 한 것이나 오지 않은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겠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우선 공부해야합니다.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알고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은 무조건 감사한다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감사할 거리가 생각나게 됩니다. 이는 인사를 먼저 하면 상대가 존경스러워 지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냥 웃으면 마음도 좋은 일이 있는 줄 알고 즐거워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방법이 감사 일기를 쓰는 방법이고 감사의 화살기도를 자주 바쳐도 좋을 것입니다. 배우자와 함께 있고 싶지 않을 때는 배우자에 대한 감사한 기억들을 떠올리십시오. 그러면 다시 머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옷은 혼인 잔치 전에 입고 들어와야 합니다. 만나기 전에 먼저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빈틈없이 치장하고 초대 받은 구원의 미사에 나와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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