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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와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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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4-02-15 ㅣ No.6486

2월 15일 연중 제6주일-루가 6장 17절, 20-26절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숭어와 춤을>

 

언젠가 아이들과 서해바닷가로 소풍을 간 적이 있습니다. 출발할 때는 전혀 계획이 없었는데, 막상 바다를 보니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맥박이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시간도 남고, 차에 낚시 도구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낚싯대를 드리웠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방파제를 새로이 만든 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이어서 그런지 낚시꾼들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뭐 이런 곳에서 낚시를 다 하나?"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바닷바람도 쐴 겸, 제 주변에 앉아서 제가 던진 낚싯대 끝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날 때 까지 낚싯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해서 낚싯대를 걷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초강력 입질이 왔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낚아챘는데, 느낌이 보통 월척이 아니었습니다.

 

낚싯대가 거의 직각으로 휘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힘이 세던지 제 몸 전체가 끌려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제 옆에 있는 구경꾼에게 제 몸을 좀 잡아달라고 부탁까지 했었습니다. 10여분의 사투 끝에 고개를 내민 녀석은 거의 70센티미터나 되는 숭어였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숭어와 입맞춤을 한 것은 물론이고 숭어를 어깨에 메고 춤을 다 추었습니다.

 

오늘 "참된 행복"과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제 인생의 행복했던 여러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종신서원을 하던 날의 기쁨, 서품식 때의 성취감, 갈등관계가 해소됨을 통해서 체험했던 해방감, 큰 프로젝트 하나를 잘 마무리 지었을 때의 흐뭇함 등등 많은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진정한 행복,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행복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육적인 행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영원하고 참된 행복은 이 세상이 주는 행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암브로시오 교부는 이 참된 행복과 관련된 복음 구절을 인간 영혼이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 밟아야 할 계단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순례 길을 걸어가는 교회공동체가 올바른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결정적 방향타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참된 행복"의 조건 한 가지 한 가지를 묵상하면서 제 삶을 돌아보니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 여기면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여기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와서야 솔직히 인정하는 바이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한계나 무력감을 철저하게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음을 알게 된 사면초가 순간, 막다른 골목 그 끝에 서서 괴로워하던 순간들이 오히려 은총의 순간이었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의 순간만큼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절실하게 하느님께 손을 내밀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가장 하느님과 제 자신에 대해서 솔직했던 순간, 겸손해진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진리는 언제나 역설적입니다. 현실적 불행, 그 안에는 묘하게도 진정한 행복의 씨앗이 싹트고 있습니다. 이 납득하기 힘든 진리를 하루라도 더 빨리 깨닫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닥으로 내려가야 올라가며, 죽어야 산다는 그 역설의 진리를 깨치는 순간,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 순간은 우리 신앙이 한 단계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나 인간이 주는 기쁨들은 모두 순간적인 것입니다. 있다가도 없어지며, 얻었다가도 잃어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것들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행복,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죽고 우리 자신이 없어져야만 우리 존재 전체를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우리가 없어지는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우리 존재 전체를 당신 영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말끔히 비워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살아 숨쉬심으로 인해 행복한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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