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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 자매님의 건방진 수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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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심 [santav] 쪽지 캡슐

2006-06-05 ㅣ No.2778

그 자매님의 건방진 수난기
작성자 이정심 작성일 06-06-0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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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매님의 글들을 쭈욱 지켜보았었습니다만.

그 자매님은 한 명문가의 늦동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더군요.
명문으로서의 자존심과 가난과 끊임없는 가정적 사회적 불화속에서 멈춤없는 갈등을 겪으며 끊임없는 마음속에 평화를 갈망하며 자랐다고도 했고, 모든 학업 성적은 늘 꼴찌였다고도 자신을 소개했더군요.

자신은 세계 고전들을 여기저기서 빌려 보는 낙으로 청춘을 보냈다고도 했고, 늘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적고 싶었지만 30이 넘도록 몇줄도 채우지를 못한 채 살았다고도 했습니다.

그녀는 바람을 벗삼아 하늘을 지붕삼아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처럼 탁트인 하늘에 자신을 맡겼다고도 했구요.

그런 그녀는 어린시절 원불교라는 종교생활을 하였는데, 기도 할 때 기도의 대상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 광주대학살즈음 어머니를 잃고 자신이 가고 싶은 가톨릭으로 가는 것을 보류하고 믿음이 있으신 이모님 손에 의해 개신교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그 교회에서 솔로도 하는 등 교인들과 친구들 제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6년정도의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개종하면 절교하겠다는 친구들과 선생님 눈물을 흘리는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였다고 했더군요.

1년간의 휴식기간을 갖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그동안 개신교에서 배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완성을 보고 첫미사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도 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세례때 대모님이 세례때 비는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성녀가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었지만, 일을 하면서부터 성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행복한 세계가 되었음 좋겠다는 말도 하였더군요.

아마도 가톨릭 개종 후 그녀는 청년단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다 실패를 하였다했고, 그 상처를 정리하는데 무려 7~8년이 필요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자신과 결혼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많았으며 그 중에서 지금의 남편을 하느님께 여쭈어 선택을 하였다했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받은 두번째 축복으로 남편을 꼽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자신을 초등학교시절에 안나를 만나 성당에 간 때부터 자신을 택하신 줄을 알고 30세 중반에 본 미사때 많이 울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을 첫번째 축복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파트를 분양받고 분양금이 부족하여 단칸방도 얻기 힘든 돈으로 살곳이 없어 막막한 때에  대기업에서 일어나기 힘든 기적같은 발령을 받아 일본에서 집뿐만아니라 한국의 어려운 가족들까지 많은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도 쓰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기적들을 많이 체험하였고, 책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의 심오한 말씀을 공부하였다했으며,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살리시고 인도하셨으며 가르치셨다고도 쓰여져 있습니다.

편찮으신 시부모님을 모시겠다는 각오로 한국행을 희망해 돌아오지만, 신축한 성당에 일조를 못한 것을 못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녀는 별다르게 외출없이 시부모님 그늘에서 죽음을 꿈꾸며 살다가 결국 시부모님의 분가로 새로운 일을 모색하게 되었다합니다.

물론 그녀의 일정한 시부모에 대한 애정은 분가 1년 후에서야 빛을 보게 되고, 관계가 좋아졌다더군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넷을 낳은 그녀에겐 단 1시간이라도 가사이든 말동무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 그 모든 외로움과 고독을 불철주야 병원으로 간호로 가사노동으로 눈물 범벅되어도 친구가 하느님뿐이었다고 합니다.

1999년 그녀는 릴레이불씨운동으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타종교까지도 하나되게 하는 구신교 일치운동을 시작합니다.

성바오로딸 인터넷시작으로 전국각지의 적잖은 사람에게 환영을 받으며 출발한 그녀는 자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분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2000년 흩어진 신교의 친구들을 찾아 성황리에 모임을 갖는 그녀는 가난으로 학창시절 음악에 대한 꿈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을 사랑으로 메꾸기 위해 학창시절을 보냈던 개신교에 장학재단설립을 시작하려하지만,몇몇 체면주의를 따지는 친구와 후배에 의해서 좌절을 겪습니다.

장학금으로 서울대까지 나온 친구는 극구 그녀가 다니던 산본성당게시판이며 넷상에서 싸움을 걸어 좋은 쪽으로 해결을 해보려 노력함에도 불구 결국 산본성당 게시판에서 쫒겨납니다.

이후 지방으로 이사를 한 그녀는 다시 어린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는 아이엄마들과 아이를 놀리며 함께 성서주변역사 책들로 그룹스터디를 만들어 1년여 기간동안 행복한 나눔을 갖지만, 아파트의 혁명사로해서 비상시 부녀회장으로 뽑혔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주민들의 재산권을 지켜주기 위해 완충역할을 해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계속 신축성당 지역으로 이전을 하는데 그때마다 교우들과 사제들 간에 갈등이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거기다 친정 오빠가 부정부패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생계를 끊기는 일을 당하는등 그런 일들 앞에서 가슴아파한 그녀는 끊임없이 물질적 정신적인 나눔활동을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많고 도와주는 이가 없어 외출이 어려운 그녀는 정신만은 활발하게 지상과 우주를 넘나드는 자유를 구사하며  사회와 나라와 각 지역들에게 일어나는 끊임없는 이념적인 또는 물질적인 갈등들 속에서 늘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명동성당을 들렀던 그녀가 가톨릭합창단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한번의 연주회를 갖고 가톨릭합창단 게시판에서 위도핵폐기장 건설 반대에 대한 의견을 썼다가 게시판에서 추방되어 우리가 보았듯이 주교회의 게시판에서 많이 울부짖는 아픈 호소를 하며 결국 극복을 해 냅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일과 사람 사이에 늘 먼저라는 것을 주장하며 온갖 갈등이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늘 그 어느쪽 편을 들지 않는 그녀는 모두가 그녀를 미워하는 구도에 서 있습니다.

그 자매님은 가톨릭굿뉴스 게시판에서는 정치관련글을 자유게시판에 잘못 1달간 정지를 먹습니다.

그리고 이곳 주교회의에서는 숱한 갈등문제에 끼어들기도 하고 위험을 예고하기도 하더니 이번엔 원주교구 주교님이하 사제님들을 모독하여 결국 이 게시판에서도 쫒겨났습니다.

그녀는 한 문제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늘 모든 갈등 문제에서 줄기차게 약자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서 약자편을 들었다면 그녀는 늘 모든 문제의 강자들에게 적이 된 셈입니다.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이 항상 늘어나고 있었던 거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굉장한 많은 실수를 합니다.

함부로 말을 하는 버릇을 가진 것이지요.

그녀의 남편이 주말도 명절도 없이 잠도 부족한 체 기계처럼 일을 한 대기업 최근 7여년 세월동안에도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남편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꿋꿋이 지원하고 견디며 살아 온 그녀가 남편이 회사 일을 성공시켜 주어 책임을 다했다 싶을 즈음 남편을 회사에서 불러들여 회사를 당장 그만두게 한 그녀.

박봉에도 여기저기 재산을 쪼개어 집도 마련해주고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서도 자신이 잘 사는 것을 늘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

노력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누고 늘 거짓과 협상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는 잘살 수 있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아이를 많이 낳아 길러도 모두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삶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을 증거하여야 한다고 믿는 그녀.

남편 회사에서 주겠다는 혜택들도 사양해가며 병이 들어 퇴사를 하였어도 근무했던 대기업의 상관인 상무,부사장,사장,부회장,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갑부인 회장에게까지 그동안 고마웠다고 호텔에서 과일바구니와 와인을 주문해서 보낼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그녀.

사제들과 목사들에게도 후원을 해내던 그녀.

그녀는 세계평화를 위해 세계를 호령하고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건방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가장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늘 쫒겨났었다.

첫번째는 청년들에게
두번째는 친구들에게
세번째는 자신이 다녔던 성당게시판에서
네번째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주민들에 의해서
다섯번째는 대축일 미사 성가를 봉헌하는 가톨릭합창단에서
여섯번째는 가톨릭굿뉴스게시판에서
일곱번째는 주교회의에서 늘 넘어지고 쫒겨나고를 반복하며 오늘도 그녀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늘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었다.

단지 다른 갈등 문제에서 다시 사랑을 주창하며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더 겸손하게 더 낫게 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창하듯 더 나은 사랑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표정완   (06-06-05 18:51  )
제 오해일수도 있지만 최희정님 본인이 쓰신글 이라던가 혹은 부탁받아 올리는 글처럼 느껴지는군요.

어찌 되었든 다 주님의 뜻대로 풀어지길 기도하겠습니다.

다만 최희정님이나 저나 그리고 모든분에게 부족했던것은 진실한 주님의 사랑이였지요.

그럼 평안하시라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정심님께도 평화가 있길 기도합니다.
표정완   (06-06-05 18:54  )
병사의 검은 한사람을 죽이고 왕의 검은 한 나라를 죽이며 군자의 검은 한 시대를 죽입니다. 하지만 침묵의 검은 모든것을 살려낼수 있지요. 침묵속에 자신안에 심어진 주님의 평화와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이정심   (06-06-05 19:00  ) 수정 삭제
그럼, 유태인학살이나 일제강점기의 수난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사건에 대한 침묵은 무엇인가요?

그것도 사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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